수용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굳게 견디며 속죄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교도관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수용자들을 안전을 책임지시는 분들께 기도합니다. 변호사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노력하시는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법관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공정한 판결로 억울한 자를 풀어주고, 죄인을 처벌하는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수용자들의 가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매불망 출소날을 기다리는 가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피해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범죄로 인해 삶이 망가진 이들이 일상을 회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더 시사법률>을 위해 기도합니다.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올바른 언론을 위해 기도합니다.
30년 전 일이다. 좁은 골목 벽돌담에 켜켜이 쌓인 누런 연탄재와 ‘개 조심’ 문구, 골목 끝 초록색 양철 대문 오른편에 네 식구가 세 들어 사는 문간방이 우리 집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누나와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군밤을 까먹고 있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올까?” 당시 여섯 살인 나는 기대에 부풀어 말했다. “이제 세상에 산타는 없어.” 누나가 찬물을 끼얹듯 말했다. “혹시 모르니 양말 걸어 두자.” 그렇게 양말 두 짝을 못에 걸고 잠들었다. 다음날 나를 흔들어 깨운 누나가 눈앞에 양말을 들이밀며 간밤에 산타가 다녀갔다고 말했다. 묵직한 양말을 보고 화들짝 잠에서 깬 나는 선물을 확인하고 또 한 번 놀랐다. 양말 안에는 빨간 사과 두 개가 들어있었다. 눈사람이 연상되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났다. 누나와 나는 TV 앞에 둘러앉아 사과를 먹었다. 주먹만 한 사과를 한 입 크게 깨물자 아삭 소리와 함께 과즙이 입안에 가득 찼다. 아랫목에선 따뜻한 온기가 피어오르고 창문으로 들어온 무지개 빛은 가슴속을 유영했다. 어두운 밤길 산타는 문 닫는 점포에 들러 꼬깃꼬깃 접어둔 비상금으로 선물을 샀을 것이다. 그리고 행복해 할 남매를 상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겠지.
어느 날 우리 집에 찾아온 뾰족 뾰족 고슴도치 넌 누구니? 뭐가 무서워 가시를 세웠니? 손으로 주워 들자 발라당 핑크색 배를 보이는 이것은 뾰족 뾰족 고슴도치 아니 뾰족한 가시가 수없이 박힌 당신의 심장 아주 뾰족하고 날카로운 가시는 당신의 심장에 박혀있는데 내 손 다칠까 거꾸로 누워 더욱 깊이 박혀가는 가시 처음으로 마주한 당신의 심장은 뾰족 뾰족 고슴도치 이제 핑크색 부분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다시 한번 가시를 찔러 넣는다. 어느날, 내 손에서 자기의 심장을 본 당신은 재빨리 낚아채 다시 집어 넣고 뾰족 뾰족 가시에 찔리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나를 보고 웃는다.
처음으로 이곳에 들어왔다. 들어와 일주일 동안 나와 같은 교린이(첫 징역) 처지인 사람들과 신입방에서 생활했다. 그곳에서 매일 밤마다 우는 아저씨가 말했다. “여긴 신입 방이어서 곧 본방으로 갈 거야. 거긴 흉악범들밖에 없을 거야….”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얼굴은 아저씨가 제일 흉악범인데….’ 일주일 내내 새벽마다 아저씨는 흐느꼈고, 난 잠에서 깰 때마다 흐느끼는 아저씨의 얼굴을 보며 흐느꼈다. ‘이런 아저씨랑 같이 살아야… 해? 정말 내 인생…’ 절망의 일주일이 지나고 아저씨와 서로 다른 본방에 배치받았다. 절망핑 아저씨는 나와 헤어진다고 다시 한번 흐느꼈다. “흑… 흑… 근데 소시지는 내가 가져가도 돼? 내가 소시지 없으면 밥을 못 먹어서….” 정말 어이가 없었다. 단 하나도 사지 않았으면서… 눈물에 호소하는 무자본 M&A라니…나는 모든 먹을 것들을 절망핑 아저씨에게 주고, 식판과 모포만 챙겨 본방으로 갔다. 처음 들어간 본방은 답답한 느낌이었다. 신입 방에 비해, 짐들이나 생필품이 곳곳에 가득 차 있었다. 방문이 닫히고 5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었다. (A 아저씨라 칭하겠습니다.) “우리 조카, 자기소개 한 번 해볼
어릴 적 우리 가족은 아빠의 갑작스러운 발령으로 중국에 가게 됐다. 중국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가정부 아주머니가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을 중국어로 아주머니라는 뜻의 ‘아이’라고 불렀다. 나는 아이를 싫어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중국어로 자꾸 말을 걸고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계속 권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스쿨버스에서 깜빡 잠들어 내리지 못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됐다. 마중 나왔던 아이는 내가 오지 않아 중국어를 못하는 엄마를 대신해 사방팔방으로 나를 찾아다녔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갈 수 있었는데 그때 아이는 나를 챙기지 못한 기사님께 불같이 화를 냈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녀가 나를 걱정하고 아낀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그때부터 아이가 좋아졌다. 나이와 국격을 넘은 우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이는 정이 많았다. 그녀는 모든 게 낯선 우리 가족을 진짜 가족처럼 대했다. 엄마와 아이는 사전으로 단어를 찾아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항상 엄마를 시장에 데려가 함께 장을 봤다. 새해에는 중국의 풍습에 맞춰 밤12시가 되자마자 집으로 전화를 걸어 우리 가족을 모두 깨운 적도 있다. 이사한 날에는 나쁜 기운을 내쫓고 복을 불러들여
사동의 밤 이야기를 꺼내자면, 겉으로는 잠잠해 보이지만 속사정은 전혀 다르다는 점부터 짚어야 합니다. 저녁이 되면 사동 복도 바닥 위로 녹색 카펫이 펼쳐집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야간 순찰을 도는 근무자의 발소리를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소한 소리 하나에도 민감해질 수 있는 환경인 만큼, 수용자들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는 나름의 조치입니다. 시설 운영 측면에서도 밤 시간대에 사동이 잠잠하게 유지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온갖 사유로 호출이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누군가는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며 의료 조치를 요청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급히 전해야 할 말이 있다며 외부 연락을 부탁합니다. "면회를 와달라고 전해달라"는 요청도 있고, 영치금이 바닥났으니 가족에게 전화 한 통만 넣어달라는 부탁도 나옵니다. 여기서 영치금이란 수용자가 시설 내에서 쓸 수 있도록 맡겨둔 개인 자금을 뜻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사소해 보이는 요청도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뜨거운 물 한 통만 가져다 달라"는 식의 부탁을 시작으로, 다양한 이유를 들어 계속해서 근무자를 찾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어느덧 또 한 해가 지나갔다. 수감 된지도 2년이 지난 봄날, 몸에는 서서히 온기가 스며들지만 지난날을 떠올릴 때마다 밀려오는 죄스러운 마음은 쉽게 녹지 않아고 가슴 한편은 아직 혹독한 겨울에 머물러 있다. 한때는 억울하다 여겼던 마음도 있었지만 이 또한 혹독한 겨울 깊숙이 묻혀 버렸다. 가족들은 매번 "아빠, 빨리 와."라고 말해 준다. 그 말은 반갑고 간절하지만, 한편으로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처지임을 다시금 상기한다. 지난 세월의 죄는 잊혀져서도 안 되고 나 또한 잊지 않은 채 살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주제도 모른 채 창틈으로 스미는 봄기운이 반갑고, 가족들을 떠올리는 순간엔 가슴이 저려온다. 이곳에서의 2년은 적막하기만 하다. 같은 자리, 같은 사람, 같은 풍경 속에서 지나다 보면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함부로 여기고 행동했는지 조금씩 깨닫게 된다. 나같은 사람이 계절의 따뜻함을 느껴도 되는지 묻게 되고, 그 잘못을 끝내 잊지 않고 견디며 돌아보게 하는 봄이라 여기려 한다. 언젠가 사회와 마주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잘못을 잊지 않고 낮은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오늘도 나는 그 마음을 새기며 부끄러움 속에서 조금씩 봄을 느끼며 살아간다.
여러분과 제 생각과 다짐을 나누고 싶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저는 음주 운전으로 여러 번 적발된 끝에 결국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엔 "재수가 없었네" 하며 벌금을 내고는, "이제 진짜 조심해야지" 다짐해 놓고도 또 같은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오늘 하루쯤이야", "집이 가까운데 뭐"라는 안일하고 이기적인 마음이 늘 제 안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오만한 생각은 결국 철창행이었습니다. 선고 결과를 듣던 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지만, 그보다 저를 더 두렵고 부끄럽게 만든 건 피해자와 그 가족분들의 눈빛이었습니다. 나의 잘못으로 누군가의 인생에 얼마나 거대한 불행이 닥쳤는지, 그리고 그 대가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그 눈빛을 보고서야 깨달았습니다. 이곳에 들어온 후, "내가 대체 왜 그랬을까" 수없이 후회했습니다. 그깟 술 몇 잔의 쾌락이 그분들의 인생을 이토록 어둡게 망가뜨렸다는 사실에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술이 아니라, 바로 저 자신이었다는 것을요. 스트레스받는다고 마시고, 기분 좋다고 마시고, 심심하다고 마시고, 저는 술을 핑계 삼아 아무 죄 없는 분들의 일상을 파괴했고 제 자신의
<더 시사법률>로 써보는 오늘의 일기 향정신성 약품 투약으로 이곳에 들어온 지 1년 6개월. 여전히 매일이 쉽지 않지만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약물에 찌들어 있던 몸이 비명을 지르듯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금단 증상 때문에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벽에 머리를 박고 기절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교도관님들 앞에서 짐승처럼 헐떡이는 내 모습을 보이는 게 수치스러웠지만 내 몸은 이미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한 달쯤 지나 떨림도 멈추고 땀도 나지 않자 내 안에서 오만한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생각보다 참을 만하네. 이 쉬운 걸 왜 밖에서는 못해서 여기까지 왔지?' 하지만 같은 방을 쓰던 형이 내게 서늘한 경고를 던졌다. "야, 네 눈빛 보면 다 티 나. 여기서 나가면 다 잊고 알아서 잘 끊을 수 있을 것 같지? 절대 아니야."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형은 나와 같은 죄로 벌써 세 번째 들어온 사람이었다. 교도소 내 마약 재활 프로그램도 처음엔 그저 시간이나 때우려 참석했다. 그런데 몇 번 가다 보니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핑계가 하나같이 나와 똑같았다. '우연히', '호기심에', '의도치 않게'. 나
두 달에 한 번 그 먼 파주에서 이곳 강릉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돌봄 접견을 와주는 당신께 고맙고 또 한없이 미안합니다. 나의 어리석은 잘못 때문에 당신이 홀로 감당해야 했던 아이들 입학식, 그리고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조차 홀로 묵묵히 이겨내며 아무렇지 않은 척 사진을 보내주던 당신의 모습에 가슴이 많이 무너졌어. 오히려 연락 못 해서 미안하다며 못난 내 걱정부터 먼저 해주는 당신.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그 웃음 속에 숨겨진 고통과 막막함을 알면서도 내 잘못으로 인해 갇혀 있는 내 처지가 한심하고 미안해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던 내 자신이 참 밉고 부끄럽네.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늘 "괜찮아"라며 내 마음부터 다독여주는 당신에게 평생 갚아도 모자랄 빚을 지고 있어. 내가 지은 죄로 나와 같이 짐을 짊어진 우리 가족 내가 평생 묵묵히 다 갚으며 살게. 정말 사랑합니다. 우리 딸, 사랑해. 우리 아들, 사랑해. “우리 가족, 정말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