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판사는 누구?… ‘재판 보조’ 아닌 실질 판결 ‘좌우’

기록 검토부터 판결문 작성까지
업무 과중·장기 배석기간 문제

 

합의부 재판에서 배석판사는 단순한 재판 보조가 아니다. 기록 검토, 판결문 작성, 법리 분석까지 재판의 실질적 흐름을 좌우하는 핵심 주체다. 그러나 높은 업무 강도와 긴 배석 기간이 문제가 되면서, 배석판사 제도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배석판사들이 판결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법원 합의부는 통상 재판장 1명과 배석판사 2명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해당 사건의 판결문 작성을 맡는 판사를 ‘주심’이라고 한다. 재판장이 주심인 경우도 있지만, 배석판사가 주심을 맡는 경우도 많다.


주심은 사건당 수백에서 수천 쪽에 달하는 자료 기록과 함께 관련 법률을 검토하고, 판결문 초안 작성까지 재판 전 과정을 도맡는다. 이에 따라 실무상 재판장의 결정은 주심의 의견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재판장과 배석판사의 의견이 다를 경우, 배석판사의 의견을 따르는 사례 역시 존재한다.


이 같은 구조는 배석판사 제도의 가장 큰 강점으로 꼽힌다. 우선 각 사건마다 깊이 있는 검토가 가능하고, 재판장이 여러 사건을 총괄하는 부담을 줄여준다. 부장판사급의 재판장은 1년에 수백여 건의 재판을 맡게 되는데, 이 같은 업무량은 각 사건의 세부사항을 뒷받침하는 배석판사가 존재하지 않으면 감당하기 힘든 구조다.


판사들에게도 배석 제도는 유용하다. 주심으로서 판결문 작성이라는 고유 업무를 통해 젊은 판사는 법률적 서사 구성과 판시 능력을 빠르게 체득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판사들은 “배석 시절이 가장 법률가다운 훈련 기간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배석제도의 구조적인 단점도 명확하다. 우선 배석의 업무량 역시 지나치게 과중하다. 서울지법 합의부 기준으로 민사 배석은 약 200건, 형사 배석은 100건 이상을 동시에 담당한다. 매일 결심과 선고가 반복되며, 판결문 작성은 통상 선고 전 2주 내에 완료해야 한다. 특히 쟁점이 복잡한 사건은 관련 자료 탐색만 수일이 소요되는 경우도 흔하다. 또한 재판장의 피드백을 반영한 수정까지 거쳐야 한다. 현실적으로 주 2~3회 이상 심야 야근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또한 배석판사는 재판의 모든 절차를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 주심이 주도한 분석이 있더라도, 재판의 흐름은 부장판사가 결정한다. 휴가와 연차조차 세 명이 동시에 일정 조율을 해야 가능하다. 민사는 변호인 일정, 형사는 구속 기한에 따라 휴가 중에도 재판을 이어가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재판의 독립성과 유연성 측면에서 배석은 구조적으로 제약이 많다.


배석기간의 장기화 역시 제도적 문제로 지적된다. 과거에는 신임법관이 평균 5~6년의 배석을 거쳐 단독판사로 전보됐지만, 법조일원화 이후 배석경력 8~9년차 판사도 적지 않다. 평생법관제 도입으로 법원장을 지낸 고참 법관들이 일선으로 복귀하면서, 신규 법관의 단독 전보가 계속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2018년 법관대표회의에서는 ‘배석제도의 존속과 개선’이 안건으로 상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배석판사 제도는 초기 법관에게 실질적 역량을 빠르게 축적할 수 있는 통로이자, 재판장의 부담을 나누는 효율적 시스템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과중한 책임과 제한된 권한, 지나치게 길어진 경력 누적 구조는 지속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일선 법원에서는 판결문 분담 비율 조정, 사건 수 감축, 단독 전보 기준 명확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법무법인 JK 판사출신 김수엽 대표 변호사는 “단독 전보 기준이 불투명하면 법관 개개인의 경력 설계가 어려워진다”며 “재판부별 사건 수 조정과 단독 전보의 일정한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일정 기간 이후 단독 재판을 책임지는 방식 등의 법관 성장 경로 구조화가 병행돼야 배석제도의 순기능이 유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