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불특정 다수에 공개된 자료 무단반출, 배임죄 해당 안 돼”

자료 유출만으로는 유죄 안돼…
경쟁사 이익 여부까지 따져봐야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자료를 무단 반출한 행위에 대해 업무상 배임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필러 원재료를 제조하는 A 사에 근무하다 퇴사 후 경쟁사 대표로 취업한 B 씨에게 업무상 배임 혐의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1심은 B 씨가 일부 시험성적서와 실험 결과 보고서 등을 A 사의 영업상 주요 자산으로 보고 B 씨가 이를 퇴사 후 반환 및 폐기해야 하는 하는 데도 무단 반출했다는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또 고의도 있었다고 보고 유죄로 판단,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16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했다.


2심도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며 이를 유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2심은 국내 필러 생산 업체들 대부분이 콜라겐이나 히알루론산을 원재료로 사용해 오고 있는 것과 달리 A 사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가교 덱스트린’ 화합물을 원재료로 사용하고 있고, 이를 인체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여러 실험을 거쳤으므로 이 사건 각 자료는 A 사가 상당한 시간이나 노력, 비용을 들인 영업상 주요자산이 포함된 자료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검사가 공소사실로 특정한 이 사건 각 자료가 A 사가 제작하는 필러와 관련돼 있다고 볼 만한 내용이 없고, 일부 자료는 A 사를 통하지 않고서도 입수할 수 있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정보라고 봤다.


재판부는 우선 해당 자료에 대해 “A 사는 제품을 개발하거나 직접 생산한 주체가 아니라, 단순한 구매자일 뿐”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이 자료는 제조업체가 작성해 제공한 문서로, 특정 제품이 품질 기준을 충족했는지 확인하는 수준의 자료이며, 이런 자료는 일반적으로 제조사의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A 사가 해당 자료를 통해 경쟁 우위를 얻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이 자료들이 회사의 영업상 주요 자산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기존 판례를 인용해 “업무상 배임이 되려면 해당 자료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고, 회사가 그것을 얻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였으며, 경쟁사가 그것을 사용해 실질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그런데도 원심은 각 자료가 피해 회사의 영업상 주요한 재산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며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영업상 주요한 자산의 반출에 따른 업무상배임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