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6일 이 세상에 내 눈을 쏙 빼 닮은 딸아이 두 녀석이 태어났다.
이란성 쌍둥이…
볼을 비벼보고, 살짝 꼬집어 보고, 내 배에 올려놔 보고, 두 팔로 안아보고, 앞뒤로 업어 보고, 밤새 우는 아이를 재워보고, 우유를 먹여보고, 내 쭈쭈도 물려보고…
혹여 닳을까, 혹여 떨어질라, 땅에 내려놓는 것도 아까울라…
어쩜 이렇게도 예쁠까? 어쩜 이렇게도 귀여울까? 이토록 아름다운 인형을 내가 만들었다고?
“아빠~” 오메 아빠라고 했다.
“여보~ 방금 아빠라고 했어.
“아빠~ 아빠~” 내가 만든 인형이 이제 말도 한다.
내게 아빠라고 하는데? 분명 아빠라고 했는데…
그래, 내가 너희 아빠다. 내가 창조주다. 내가 너희 둘을 한방에 만들어낸 창조주다.
기어다니던 녀석들이 아장아장 걷는다.
“오~ 걷는다. 걷는다.”
“여보! 봤어? 걷는 거?”
아빠도 그때가… 아장아장 걷던 그때가 그립다.
할머니 품에서, 할머니 손을 잡고 살던 그때가…
너무도 그립다. 할머니 품에서 엉엉 울었던 그때가…
밥상 머리 파리채를 움켜쥐고 밥을 떠먹이는 그 전투적인 할머니…
이제 그 추억에 비슷하게 돌아보며 마주하는 내 딸아이를 보면서, 그때… 그 기억을 떠올려… 나도 너희들처럼 귀여웠고, 캥거루 마냥 배 주머니 속에서 보호받고 사랑받던 그 찬란한 순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느덧 내 삶에 좌절이 찾아왔다.
이토록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죽는구나. 이렇게 내 인생은 끝이구나… 살아서 뭐 하나…
그렇다면 내 아이들은, 내가 창조해낸 쌍둥이 내 딸들은…
내 마누라는… 어떻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지?
내 부모님은… 사랑하는 할머니는…
엄마는 84년 6월 11일에 떠나보내고, 80년 6월 11일생 여자를 만나 지금껏 살고 있다.
그녀는 평생 소원이던 쌍둥이를 선물했다. 나에게…
엄마 기일과 같은 날 태어난 여자, 6월 11일…
우리 딸 생일은 11월 6일… 엄마가 6월 11을 반대로 11월 6일에 만들어준 선물인가?
피고를 징역 2년에 처한다.
안정이 안되는데 인정을 해야만 했던 내 인생의 좌절.
얼마나 밉고 처절하던지 하루에도 수없이 죽으려고만 했다.
이런 바보 같은 날 이해하고, 용서하고 내 곁을 지켜주는 마누라…
아빠가 외국에서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두 딸…
그리고 나를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
이제 일 년이 남았다.
맛있는 밥, 지켜주는 근무자...
비록 이곳에서 만났지만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동료 수형자들.
다시는 이곳에 들어오지 않겠다며 굳은 다짐을 기억하며, 하루하루 내 가족… 모든 이에게 평생을 갚겠다는 다짐, 뉘우침으로 꿈을 꾸듯 그 찬란한 순간을 기다린다.
할머니 손을 잡고 거닐던 예쁜 기억 저편, 엄마가 보내준 선물, 내 마누라…
행복했던 순간… 살아야지. 그래, 살아야지…
우리 두 딸과 예쁜 삶을 나눠야지.
내 삶의 곳곳에 묻혀 전부이고, 우선이 되는 모든 게 바로 나의 찬란함이요 평생을 간직할 고마워해야 할 빛나는 찬란함이 아닐까.
이 담장을 넘어서는 날…
내 마누라, 내 형제가 우두커니 반겨줄 텐데, 내 삶의 빛으로 비추어 줄 텐데…
내가 그토록 원하는 담 밖의 세상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 ‘찬란한 순간’이 아닐까?
나를 끌어 안아주겠지.
고생했다고 토닥여 주겠지.
내 모든 것에 미소가 꽃피우겠지.
모두에게 찬란한 희망이며, 동반자로…
거듭 약속했던 그 모든 걸 지키며 살아야겠지.
우리 쌍둥이… 자고 있을 우리 두 딸의 곁으로…
만지고 토닥일 수 있는 그 ‘찬란한 순간’을 경험하겠지.
나의 소중한 추억으로부터 나의 삶이 만들어지던 순간으로부터, 나의 분신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세월을 거스르는 배움, 이 모든 자유를 잃어 세상에 좌절을 맛보는 처절한 고통, 그렇게 견디고 인고하며 얻어지는 단단함…
이 모든 순간이 나의 ‘찬란한 순간’으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