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 언니 (서울구치소)

 

언니, 잘 지내고 있어요?

 

작년 10월에 언니가 집행유예로 나가셨으니까 8개월이 지났네요.

 

그때 막내딸이 임신 중이라 혹 실형을 받고 기결수가 되면 어쩌나 걱정 많이 하셨는데 지금은 손자 품에 안고 함박웃음 지으며 살고 있겠네요.

 

언니가 선고 며칠 앞두고 나한테 그러셨지요? 뜬금없이 “도와줘서 고마웠다”고…

 

나는 언니를 도와준 게 없는데 언니가 그러기에 그냥 인사치레로 받았었지요.

작년 여름은 정말 ‘살인 더위’라는 말을 실감했었잖아요.

 

더위 타는 언니가 너무 힘들어해서 나는 언니의 빨래를 해주었었고 사물함도 심심하면 정리를 했잖아요.

 

솔직히 언니를 도와준다는 배려심보다는 내 성격상 주위가 어지러운 걸 못 보고 있기 때문에 나이 많은 언니에게 잔소리를 하느니 내가 했던 건데 언니는 불쾌해 하거나 짜증을 내기보다는 오히려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많이 편했답니다.

 

“고마웠다”라는 인사는 언니가 아니라 내 쪽입니다.

언니는 수감생활하면서 남에게 많이 베푸셨고, 어린애들이 거실에서 엉뚱한 짓을 할 때는 가차 없이 훈계도 했었지요.

 

어떤 애들은 반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난 언니의 그런 모습을 내심 맘에 들어 했었습니다.

언니가 집행유예로 가족 품으로 가셨을 때는 누구보다도 나는 “잘 됐다” 했었습니다.

 

그렇게 언니를 잊어갈 때 즈음, 언니가 접견을 와 주셨고 영치금까지 20만 원을 넣어주셨을 때 감사함보다는 부담이 앞섰습니다.

 

헌데 언니는 주소나 연락처를 알려주는 대신에 “경주에 올 일 있으면 중앙시장 손두부 가게를 찾아라”라고 했었지요.

 

언니와 인연을 맺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에게 달렸다는 뜻이었습니다.

 

○○ 언니, 언니가 선고 전에 “접견 온다”는 둥 “영치금 보내준다”는 둥 했었다면 나는 그 즉시 언니로부터 등을 돌렸을 겁니다.

 

여기 사람들… 출소하면서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 그 두 가지로 마음을 다치게 하는 거 옆에서 많이 봤었거든요.

 

나는 말이 먼저인 사람은 사회에서도 멀리했습니다.

 

내가 언니를 만나면 막걸리에 삼겹살 먹는 거 좋아하는 언니와 같이 꼭! 그렇게 한 번 먹을까 합니다.

그때까지 몸 건강하게 있기를 바랍니다.

 

혹, 경주에서 언니를 만나지 못할지라도 아니, 영원히 만나지 못할지라도 가끔 언니가 생각날 때마다 응원할게요.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