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의 국기(國技)인 태권도는 심신을 단련하여 고도의 무술을 발휘하는 무도이지만, 1980년대 이후부터는 성장기 아이들의 교양 운동으로 인식되면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스포츠가 되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부터는 태권도장이 학원화되며 보육의 역할까지 맡기 시작했다.
태권도 학원은 아이들뿐 아니라 부모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태권도 학원이 늦은 시간까지 ‘돌봄 공백’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태권도장은 맞벌이 부부처럼 돌봄 여력이 없는 부모들에겐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안전한 공간이고, 아이들은 그곳에서 친구들과 다양한 레크레이션 활동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B 양에게 태권도 학원은 안전하지도, 즐겁지도 않은 곳이었다.
2008년, 8살이었던 B 양은 학교 근처에 있는 태권도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태권도 관장이었던 A 씨는 유독 B 양에게 살갑게 굴었다.
비록 가정형편은 좋지 않았지만 B 양은 상냥한 어른의 보호 아래 또래 친구들처럼 구김살 없이 지냈다.
"아빠라고 불러."
그때부터였다.
태권도 관장 A 씨가 B 양에게 본인을 ‘아빠’라 부르라 시키더니 그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신체접촉이 잦아진 것이다.
성인 어른이 본인을 성추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에는 B 양이 너무 어렸다.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심리 지배로 지배력 강화)과 그루밍(심리적 지배)으로 B 양을 자신에게 종속시킨 A 씨의 행동은 점점 대범해졌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고 성추행의 수위도 높아졌다.
2008년, 전남 광양의 한 계곡 텐트 안에서 자고 있던 B 양을 추행했고, 2010년엔 자신의 자택으로 B 양을 불러 가슴과 배, 팔 등의 신체 부위를 만졌다.
“가슴뼈가 튀어나와 있어 가슴이 벌어지니 교정을 해야겠다”는 이유에서였다.
2008년부터 2019년까지 무려 11년.
11년의 세월 동안 A 씨는 자택, 숙박시설, 태권도장을 가리지 않고 수차례 B 양을 성폭행하고 성적 수치심을 주는 학대 행위를 일삼았다.
B 양이 태권도장을 나오지 않거나 본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11년간 이어진 관장의 범죄행각은 B 양이 성인이 되어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2022년 6월, A 씨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위계 등 간음, 준강제추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13세미만 미성년자 위계 등 추행)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 양은 A 씨에 대한 엄벌을 탄원했고,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피고인은 태권도장 관장으로 가정환경이 좋지 못했던 피해자를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추행 및 간음하는 등 성인이 된 이후에도 범행을 저질렀다. 아동·청소년 성폭력 범죄는 피해 아동·청소년과 그 가족에게 엄청난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주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범죄이며 불법성 및 비난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그 책임에 상응하는 엄중한 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재판부는 피고인 A 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이로써 A 씨는 수감되었지만,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공간, 가장 믿었던 어른에게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은 B 양의 고통은 차마 가늠하기 어렵다.
국기원에서는 태권도의 정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태권도 정신은 ‘나를 이기고’,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두 개의 가치로 이루어져 있다.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나아가 세상에 이로운 결과를 가져다 주는 활동을 실행해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오늘도 어느 아이들은 태권도 학원에 간다. 그곳엔 부디 세상을 이롭게 하는 ‘태권도 정신’이 온전하게 지켜지고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