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정시설 내 취사작업에 동원된 수형자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헌법상 노동권과 건강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인권단체들은 법무부장관과 교도소장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고, 관련 법 개정과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지난 4일 교도소 취사작업과 관련해 법무부장관과 A교도소장을 피진정인으로 한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이들 단체는 “형집행법상 주 52시간으로 제한된 작업시간을 초과한 장시간 노동이 반복되고 있으며, 적절한 보호장비나 정당한 보수도 지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정을 제기한 수형자는 2024년 3월부터 1년간 교도소 취사장에서 주당 80~90시간의 노동에 시달렸고, 월평균 작업장려금은 약 14만 원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형집행법) 제71조는 일반 수형자의 작업시간을 하루 8시간, 주 52시간 이내로 제한하고 있으며, 교정시설 운영상 필요한 작업에 대해서만 1일 12시간까지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주간 총 작업시간이 법정 기준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사작업의 경우, 업무 특성상 새벽부터 시작되는 출역으로 인해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일이 많아 수형자들의 과로가 일상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작업환경의 안전조치 미비도 문제로 거론된다. 실제 피해자는 손 마디의 통증과 경직을 호소했지만 단순 진통제 처방만 받았고, 기름 묻은 바닥에서 반복적으로 넘어지면서 만성 통증까지 겪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상 게시 의무가 있는 화학물질 정보자료(MSDS)는 비치되지 않았고, 보호장비도 지급이 지연되거나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문제는 수형자가 법적으로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아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 대상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구조적 한계에 있다. 고용노동부는 2011년 “수형자는 일반적인 근로계약 관계에 있는 자가 아니므로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해석한 바 있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은 2019년 개정을 통해 보호 대상을 '근로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확대했으며, 이에 따라 유사노무종사자도 보호 대상에 포함되도록 변경됐다. 인권단체들은 “수형자 역시 매일 일정한 장소에서 실질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만큼 보호 범위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업에 대한 보수 역시 최저임금과는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진정인의 월 평균 작업장려금은 약 14만 원으로, 이는 2024년 최저임금의 월 환산액(약 206만 원)의 6.8%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취사작업에 적용되는 1일 장려금 기준은 2012년 이후 10년 넘게 동결됐다가, 2024년 겨우 200원이 인상된 바 있다. 법무부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수형자 1인당 1일 평균 작업장려금은 5,362원으로, 전년보다 오히려 감소했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2023년 결정을 통해 피보호감호자에게 지급되는 근로보상금에 대해 “최저임금의 60% 이상 지급되도록 개선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인권단체들은 이 같은 기준이 수형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엔의 ‘넬슨 만델라 규칙’ 또한 “자유노동자의 안전·보건 기준은 수형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결코 불리하게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단체들은 이번 진정을 통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작업시간 제한 규정의 법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상 보호 조치 적용 △최저임금 연동 또는 일정 비율 보장 방식의 작업장려금 지급 의무화 등을 권고할 것을 촉구했다. 이와 함께 “교대근무제 도입과 인력 확충을 통해 수형자의 과로를 줄이고, 재범 방지 및 사회복귀라는 교정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인권 중심 행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