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무소 오엔] ‘합의했지만 외상입니다’ 분할 변제 합의, 판사는 어떻게 볼까?

 

Q. <더 시사법률>을 통해 많은 법률 지식을 얻고 있습니다. 얼마 전 <더 시사법률>을 통해 봤던 내용을 제 사건에 적용해 봤습니다.


저는 구속되기 전 경찰에 체포되어 공범과 함께 유치장에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휴대폰과 노트북을 압수당했습니다. 디지털 포렌식 증거조사가 진행되었는데, 저는 혐의를 부인하고 공범은 하범이다 보니 경찰 조사에 협조하며 아는 대로 다 말했습니다.

 

체포될 때 가족이 급하게 인터넷을 보다가 아무 변호사나 선임했고,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확인도 못했습니다. 그날 저는 5시쯤 먼저 조사를 마치고 유치장으로 돌아왔고, 밤 10시쯤 공범이 경찰관들과 함께 다시 들어왔습니다.

 

그 직후 경찰이 저에게 서류를 내밀며 사인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경찰관이 ‘그냥 하면 되는 거다’라길래 내용도 안 보고 그냥 서명해 버렸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건, 그 서류가 ‘디지털 포렌식 과정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동의서였다는 사실입니다. 경찰이 그런 내용을 설명해주지도 않았고, 저는 속아서 서명한 셈입니다.

 

이후 <더 시사법률> 기사에서 “변호인이 선임된 경우, 수사기관이 디지털 포렌식 증거조사를 진행하려면 변호인에게 통보하거나 참여 기회를 줘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위법 가능성이 있다”는 글을 봤습니다.

 

그래서 재판 중에 담당 변호사에게 이 부분을 항의하며 다투자고 했더니, 변호사는 “이미 서명했으니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변호사님도 통보 못 받은 거 말하면 되지 않냐” 물으니 해봐야 소용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제가 직접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1심에서 그냥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현재 항소심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이런 경우 항소심에서 디지털 포렌식 참여권 침해 문제를 다시 다툴 수 있을까요? 그리고 당시 서명이 위법하게 수집되었다는 점을 입증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까요?


A. 대법원은 “형사소송법 제219조, 제121조가 규정한 변호인의 참여권은 피압수자의 보호를 위하여 변호인에게 주어진 고유권이므로, 설령 피압수자가 수사기관에 압수·수색영장의 집행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시하였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변호인에게는 형사소송법 제219조, 제122조에 따라 미리 집행의 일시와 장소를 통지하는 등으로 압수·수색영장의 집행에 참여할 기회를 별도로 보장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21. 12. 30. 선고 2019도10309 판결, 대법원 2020. 11. 26. 선고 2020도10729 판결, 대법원 2015. 7. 16. 자 2011모1839 전원합의체 결정 등 참고).

 

따라서 본인이 포렌식 절차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동의서를 제출했다고 하더라도, 변호인에게 참여 기회를 별도로 보장하지 않을 경우,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확보한 증거가 되어 원칙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다만, 무조건적으로 증거능력이 부정되지는 않고,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의 절차 위반행위가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고,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형사소송에 관한 절차 조항을 마련하여 적법절차의 원칙과 실체적 진실 규명의 조화를 도모하고 이를 통하여 형사 사법 정의를 실현하려 한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예외적인 경우라면, 법원은 그 증거를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20. 11. 26. 선고 2020도10729 판결, 대법원 2019. 7. 11. 선고 2018도20504 판결 등 참조).

 

이러한 사정은 절차 위반행위 관련 전후 사정, 구체적 경위, 회피가능성, 위반행위와 증거 수집 사이 관련성, 수사기관의 인식과 의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합니다.

 

따라서 피고인이 포렌식 절차 참여 부동의에 서명했더라도 선임된 변호인에게 참여 기회를 제공하지 않은 경우, 해당 포렌식을 통해 획득한 증거는 변호인의 참여권을 침해하여 위법할 수 있으며, 항소심에서 이 부분을 주장해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증거능력이 부정되는지 여부와 관련해서는,
① 수사기관이 나름 피고인의 참여권 보장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② 부당한 의도로 변호인에게 통보하지 않은 것인지,
③ 포렌식을 통해 나온 증거에 대해 의견서 제출 등 방어권을 충분히 행사했는지,
④ 포렌식을 통해 확보된 증거가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중요하고 직접적인 증거가 되는지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증거능력 여부를 결론지을 수 있겠습니다.

이 경우 당시 진행했던 담당 경찰관을 증인으로 불러서 신문하는 방법으로 입증해볼 수 있을 듯합니다(당연히 경찰은 충분히 기회 보장했다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됨).

 

다만 본인이 참여하지 않겠다고 서류에 서명한 것은 불리한 정황으로 보입니다(물론 어떤 서류인지 제대로 설명을 못 들었다고 하지만, 서류에는 설명을 듣고 서명한 것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불리함).

 

실제 유사 판례의 경우에도, 변호인에게 포렌식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았지만, 피고인이 포렌식 절차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휴대폰에서 압수한 전자정보의 임의제출서와 압수목록에 무인한 점, 피고인과 변호인이 휴대폰에서 압수한 전자정보에 관한 전자정보 확인서에 각자 서명한 점 등 고려하여 증거능력에 대한 피고인 주장을 기각한 사례가 있습니다.


Q. 지금 사정이 안 좋다 보니, 피해자에게 3억 중 1억은 먼저 주고 나머지 2억은 매달 얼마씩 갚는 조건으로 합의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피해자 쪽에서 합의서에 그걸 명시하자고 하더라고요. 사실상 외상합의인데, 합의금 분할 조건을 그대로 재판부에 제출하면, 판사가 ‘완료된 합의’로 인정 안 할 수도 있다는 사람도 있고 똑같이 인정한다는 사람도 있거든요.

 

변호사님 경험상, 외상합의는 재판에서 제대로 참작이 되던가요? 또 하나, 만약 집행유예 받고 나오게 되면 일사부재리 원칙 때문에 같은 사건으로는 다시 고소는 안 되잖아요?


그런데 외상합의하고 돈을 못 갚으면, 피해자가 다시 고소를 할 수 있는 건가요? 아니면 민사로 가는 건가요? 그 부분이 걱정돼서요. 조언 부탁드립니다.


A. 확실히 예전에는 사기를 비롯한 재산범죄 사건에서 실제 변제 여부도 당연히 고려했었지만, ‘처벌불원의 의사표시’, ‘합의서’가 들어가면 ‘합의를 위한 진지한 노력’으로 보고, 유리한 양형 사정으로 참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부 변제나 분할 변제라도 합의서가 들어갔으면 유리한 양형 사정인 건 맞습니다. 물론 지금도 법원은 처벌불원의사 표시 여부, 합의 여부를 당연히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고 있지만, 추가적으로 실제 피해금 중에서 몇 %를 변제했는지, 실제 피해회복이 얼마큼 되었는지도 중요한 양형 요소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경험상 실제로 변제가 아예 안 된 상태로 합의서만 들어갔다면 그 효과를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보이고, 합의를 완료 못 했어도 총 피해금액 대비 70% 이상 변제가 되었다면 ‘상당한 금액을 변제했다, 상당한 금액을 피해회복했다’고 하면서 집유를 붙여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이건 재판부마다 다르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입니다.

 

따라서 3억 중 1억 원은 실제 변제, 2억 원은 향후 분할 변제로 합의한다면, 합의서, 향후 실제 1억 원을 변제한 내역(계좌 이체내역)은 당연히 제출해야 하고, 2억 원 분할 변제에 대한 재판부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별도의 변제 계획서 등을 같이 제출하는 것이 집행유예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인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분할 변제하기로 하고 합의하는 경우, 보통 피해자 측에서 1회라도 분할금이 미지급될 경우 처벌불원의사를 철회할 수 있다는 조건을 함께 기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처벌불원의 의사표시는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가 아닌 한 철회 가능).

 

따라서 분할 변제금이 미납될 경우 피해자 측에서는 재고소를 할 수는 없지만, 아직 항소심이 진행 중이라면 처벌불원의사 표시를 철회할 수 있고, 항소심에서 불리한 양형 사유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합의서를 기준으로 미지급된 분할 변제금에 대한 민사 소송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