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자주 ‘우발적’이라는 단어를 듣는다. 순간의 분노, 쌓여온 감정, 갑작스러운 상황 앞에서 사람들은 쉽게 흔들리고, 그 결과는 종종 법의 심판으로 이어진다.
얼마 전 나를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도 그랬다. 조용한 말투 속엔 무거운 피로가 느껴졌고, 눈빛은 긴 시간 타지에서 버텨온 흔적을 담고 있었다.
그는 수년간 성실하게 일하며 한국에 정착하려 애써왔지만, 믿었던 동포에게 돈을 빌려주고 연락이 끊겨 감정이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찾아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격분해 폭력을 휘둘렀고, 결국 전치 6주의 진단이 나왔다. 뇌출혈을 동반한 상해 사건으로 처벌이 중한 상해죄가 성립될 상황이었다.
문제는 이 의뢰인이 외국인이었다는 점이었다. 출입국관리법상 3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강제퇴거 조처가 내려진다. 실제로 상해죄가 인정되면 집행유예 없이 실형까지 가능하고, 그렇게 되면 한국에서의 삶은 한순간에 끝날 수 있었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는 고향에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여기도 못 있고, 거기도 못 갑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법률적 대응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절실한 건 이 사람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차분히 따져본 뒤, 조용히 결심했다. 끝까지 해보자고.
우선, 피해자 측의 처벌불원 의사 확보가 급했다. 연락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의뢰인이 평소 가까이 지내던 중국 교포 지인들을 수소문했다. 직접 찾아가 사건 경위를 설명하고, 의뢰인의 반성과 사정을 전했다. 그 결과, 열다섯 명의 지인이 처벌불원서를 작성해 주었다.
“그 사람은 원래 착하고 얌전했어요. 정말 우발적인 일이었을 겁니다.”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와 동시에, 피해자 본인과의 연락도 포기하지 않았다. 통역인의 도움을 받아 진심 어린 편지를 전달했고, 몇 번의 시도 끝에 피해자로부터도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의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한고비를 넘긴 느낌이었다.
이후 나는 재판부를 설득하기 위한 의견서를 정성껏 준비했다. 의뢰인의 생활환경, 한국에서의 체류 경과, 가족과의 관계,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를 빠짐없이 담았다. 여기에 처벌불원서와 지인들의 탄원서까지 정리해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서면으로 재판부에 제출했다.
다행히도 재판부는 ‘선고유예’를 결정했다. 유죄는 인정하지만, 일정 기간 사고 없이 지내면 형을 면제받을 수 있는 결정이었다. 한국에서의 삶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
며칠 뒤, 의뢰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새벽 청소 일을 다시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다시는 법정에서 뵙지 않겠습니다.”
변호사의 조력은 단순히 형량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그 조력이, 누군가의 삶에 다시 빛이 들도록 만든다. 나는 오늘도 그 조력을 믿는다. 누군가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내가 다시 사건 기록을 펼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