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정시설 안에서 동성 수용자를 상대로 한 성추행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장시간 같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 특성상 신고나 저항이 쉽지 않아, 사건이 은폐되거나 방치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폐쇄적 구조를 악용한 사례가 늘면서 수용환경 전반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형사3단독(황해철 판사)은 지난 18일 교정시설 내에서 동성 수용자를 성추행한 혐의(강제추행)로 기소된 A씨(55)에게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1년간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기관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A씨는 서울남부구치소에서 뒷짐을 진 채 자신의 뒤에 서 있던 동성 수용자 B씨(40대)에게 다가가 주요 부위를 훑듯 만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재판에서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황 판사는 “피해자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돼 신빙성이 높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최근 교정시설 내 동성 간 성추행 사건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5월 동료 수용자의 반바지 안으로 손을 넣어 성기를 만지는 등 수개월간 상습 추행한 40대 피고인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대전지법 공주지원 역시 치료감호소에서 동성 피해자에게 입을 맞추는 등의 행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등 유사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피해를 입고도 신고조차 쉽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교정시설에서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한 출소자는 <더시사법률>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신고 사실이 알려질까 봐 두렵다”며 “신고 후 보복이 두려워 참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고, 어렵게 용기를 내 신고했음에도 오히려 피해자가 조사수용 대상이 되는 사례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피해자가 신고를 주저하는 구조적 문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인권위는 2023년 6월 교정시설 내 성추행 피해자가 신고 이후 조사수용 절차에서 오히려 장기간 분리 수용된 사례를 확인하고, 법무부 장관에게 “조사수용이 무조건적으로 이뤄지지 않도록 하고, 합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시행되도록 지침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실제 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한 수용자는 폭행과 성희롱 피해 사실을 신고했음에도 교도소 측이 “가해자와 진술이 엇갈린다”는 이유를 들어 피해자를 조사수용 조치했다.
피해자와 같은 거실에 있던 참고인 2명도 피해 사실을 일관되게 진술했지만, 교도소 측은 이를 이유로 분리수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단지 가해자의 진술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를 장기간 분리수용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며 “억울한 조사수용 피해에 대한 보상과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교정시설 내 성범죄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드러내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취약성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밀폐된 생활공간과 제한된 감시체계, 수용자 간 위계문화가 맞물려 성범죄가 은폐되기 쉬운 환경을 만든다”며 “피해 사실을 신고하면 2차 피해나 불이익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성범죄를 은폐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 보호 체계를 실효적으로 강화하지 않으면 이런 사건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