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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로서 가장 마음이 무거운 순간은 성범죄 혐의를 받는 의뢰인을 처음 만날 때다. 억울함과 두려움, 절망이 뒤섞인 눈빛은 사건을 수행하는 내내 잊히지 않는다. 회식 자리에서 갑자기 성범죄 피의자가 된 사람, 일을 하며 평범한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중 졸지에 ‘가해자’로 몰린 사람…. 사회적 낙인, 직장에서의 퇴사 압력, 가족들의 의심 속에서 그들의 삶은 무너져 내렸다.
다행히 내가 맡은 사건 대부분은 무혐의로 종결되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성범죄 사건은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가 많다.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은 그 내용의 주요 부분이 일관되며, 경험칙에 비추어 비합리적이거나 모순되는 부분이 없고, 허위로 진술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상, 그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한다(대법원 2020. 5. 14. 선고 2020도2433 판결).
피해자 보호라는 원칙 아래 피의자는 이미 ‘가해자’로 낙인찍힌 채 수사받는다. 피의자의 진술은 ‘변명’으로 치부되지만, 고소인의 진술은 ‘피해 호소’로 받아들여지는 구조적 불균형이 존재한다.
이러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나는 치밀한 법적 대응으로 의뢰인들의 무혐의를 이끌어 냈다. 의뢰인과의 첫 상담 과정에 사건 당일의 상황을 시간대별로, 장소별로 대화 내용까지 세세하게 재구성했다.
고소인이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주변에 누가 있었는지 등의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객관적 증거 확보에 집중했다.
CCTV 영상을 확보하여 피해자가 명확하게 의사표현을 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했음을 입증하거나, 통화 내역과 문자메시지를 분석하여 사후에도 고소인이 의뢰인과 자연스럽게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러한 증거들을 활용해 피해자의 진술이 사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음주 관련 준강간 사건에서는 ‘블랙아웃’과 ‘패싱아웃’의 구별이 핵심이다. 대법원은 “알코올이 위의 기억형성의 실패만을 야기한 알코올 블랙아웃 상태였다면 피해자는 기억장애 외에 인지기능이나 의식 상태의 장애에 이르렀다고 인정하기 어렵지만, 이에 비하여 피해자가 술에 취해 수면상태에 빠지는 등 의식을 상실한 패싱아웃 상태였다면 심신상실의 상태에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21. 2. 4. 선고 2018도9781 판결).
나는 이러한 법리에 집중하여 고소인이 당시 명확하게 의사표현을 하고 스스로 걸어 다녔으며 대화를 나누었다는 점을 CCTV와 목격자 진술로 입증하려고 노력하며, 단순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는 준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법리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 수사기관과 법원을 설득했다.
무혐의가 확정돼도 삶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한 의뢰인은 회사에 소문이 퍼져 퇴사 압력을 받았고, 다른 의뢰인은 고령임에도 수개월간 수사를 받으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성범죄 무고는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그러나 현실에서 무고죄 수사는 매우 소극적이다. 성범죄 사건에서는 피의자의 휴대전화 압수수색이 쉽게 이루어지지만, 무고죄 고소를 하면 정반대다. 무고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휴대전화나 대화 기록에 남아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15년간 경찰에 근무하며 수사실무를 오랫동안 경험한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불균형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성범죄 피의사건에서 신속하고 적극적인 수사가 필요한 것처럼 무고죄 사건에서도 동일한 수준의 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법 앞의 평등이다.
성범죄는 피해자 보호가 최우선이지만, 동시에 피의자의 인권도 지켜져야 한다. 진실한 피해자는 보호받아야 하지만, 무고한 피의자 역시 보호받아야 한다. 이 균형이 법의 정의다.
성범죄 변호는 한 사람의 인생을 지키는 일이다. 체포 또는 구속되어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수용된 의뢰인들에게는 접견을 통해 사건 당시의 정황을 최대한 상세히 재구성하고, 가족을 통해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며, 일관된 진술을 유지하도록 조언한다.
성범죄 사건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싸움이다. 그래서 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함께 싸워줄 변호인이 필요하다. 모두가 의뢰인에게 돌을 던질 때, 나는 그 곁에서 끝까지 같이 싸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