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변호의 현장에서 얻은 보람과 교감

전문성의 무게와 수사 단계의 진실
의뢰인과 소통은 신뢰의 시작과 끝
일상으로의 복귀와 변호사의 보람
변호사는 진실을 찾는 소통 전문가

 

성범죄 사건을 다루다 보면 언제나 느끼는 점이 있다. 이 분야는 단순한 법적 판단만으로는 진실에 도달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것이다. 사건의 특성상 당사자의 진술은 모호하고, 관계는 정형화돼 있지 않으며, 사회적 편견마저 겹쳐 사실을 왜곡하는 요소가 끝없이 달라붙는다.

 

그래서 나는 늘 “이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장 먼저 던진다. 수사기관이 그 답을 스스로 찾아주기를 기대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변호인이 사건의 맥락을 해석하고 구조화해 진실에 가장 가까운 형태로 제시해야 한다.


성범죄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뒤로 수많은 의뢰인을 만났다. 하지만 법정 판결까지 가는 사건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수사 단계에서 실체가 드러나고, 그 과정 속에서 사건이 마무리된다. 이것을 단순히 ‘합의가 됐다’거나 ‘적당히 타협했다’고 보는 시선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사건의 구조를 처음부터 정확히 파악하고, 모순을 찾아내고, 관계의 맥락을 분석해 수사기관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불기소처분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그저 운이 좋아 혐의 없음이 나오는 경우란 없다. 성범죄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결국 ‘진술의 신빙성’과 ‘관계의 맥락’이다.

 

데이트 앱 등을 통해 만난 남녀 사이에 발생한 성관계가 강간인지, 합의된 관계인지 판단하려면 두 사람이 어떤 경위로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사건 전후의 정황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사건 이후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까지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나는 늘 이 비정형적인 관계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에서 변론을 시작한다.

 

고소인의 진술 변화, 말의 맥락, 외부 증거와의 충돌 지점을 찾아내는 과정이 변론의 핵심이다. 한 의뢰인은 극도의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사건 초기에 나를 찾아왔다. 데이트 앱에서 만난 상대가 돌연 태도를 바꾸고 그를 강간죄로 고소한 상황이었다. 사회적 낙인과 형사 처벌의 위협 앞에서 그는 여태까지 쌓아 올린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커다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변호사이기에 법률적 설명만으로는 그 공포가 가라앉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감정의 매듭을 하나씩 풀어내며 사건의 흐름을 함께 정리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상담이 아니라, 위태로운 한 인간의 삶의 의지를 붙잡는 과정이기도 하다.


변호인 의견서를 작성할 때, 나는 고소인의 진술 구조와 전후 맥락의 모순을 치밀하게 따졌다. 사건 당시의 카카오톡 대화, 이후의 연락 방식, 고소인의 행동 패턴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관계가 ‘합의된 성관계’였음을 논리적으로 제시했다. 거기에 의뢰인의 일관된 진술은 설득력을 더했다.


결국 수사기관은 제출된 의견서와 자료, 그리고 의뢰인의 일관된 태도를 바탕으로 ‘혐의 없음’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의뢰인은 일상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고, 그 순간 그의 변호인으로서 느꼈던 안도와 감사함은 그동안 몇 번을 경험했음에도 가슴 벅찬 것이었다.

 

이후 5년이 지난 뒤, 그에게서 청첩장을 받게 됐다. “그때 변호사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인사와 함께 거한 식사 자리에 초대받았다. 이후로도 명절이면 선물을 보내오고, 지금도 연락을 이어간다. 그들의 삶에 내가 작은 희망을 심어주었다는 사실은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한 이유이자 이 일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성범죄 사건 변호는 법률 지식만 가지고서는 어렵다. 사건 당사자의 감정과 두려움을 이해하고, 말의 맥락을 해석하고, 조각난 사실을 이어 붙여 수사기관이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의뢰인과의 신뢰가 핵심이다. 그 신뢰를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구조화하고, 사건의 본질에 다가가며, 진실을 변론의 형태로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곧 변호인의 역할이다.


나는 지금도 성범죄 사건을 맡을 때마다 같은 마음가짐으로 임한다. 억울한 이의 삶을 지켜내고 편견 속에서 진실을 변호해 내는 일, 그 과정에서 느끼는 무게와 책임감이 결코 가볍진 않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매번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값어치는 어느 누구의 말로도 대체할 수 없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주는 가장 큰 보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