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간병에 지친 가족이 환자를 숨지게 하는 이른바 ‘간병 살인’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음에도 돌봄 부담이 개인과 가족에게 과도하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공적 지원 확대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치매를 앓던 90대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A씨가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7부(구회근 부장판사)는 원심의 형이 무겁다고 보고 A씨의 항소를 받아들여 징역 7년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약 10년 전부터 거동이 어려운 피해자를 홀로 간병해 온 유일한 가족”이라며 “사건 발생 2년 전부터는 직장을 그만두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간병에 전념해 왔다”고 감형 이유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7월 1일 서울 강서구 자택에서 방바닥에 누워 있던 아버지를 침대로 옮기던 중, 부친이 손을 깨물며 저항하자 범행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간병 살인은 경제적 부담과 극심한 피로로 인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23년까지 확인된 간병 살인 사건은 228건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경제적 부담을 지목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25년 기준 국내 연간 사적 간병비 규모는 약 10조원에 달한다. 간병인을 고용할 경우 하루 약 11만~15만원, 한 달 기준 300만~45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간병비 상당 부분이 여전히 공적 보장 체계 밖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특히 병원 입원 중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경우 개인이 간병인을 고용해야 하는 사례가 많아, 비용 부담이 고스란히 가계에 전가되고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입원 간병이나 중증·치매 환자의 상시 돌봄 수요를 충분히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도 지적된다. 이로 인해 가족이 직접 간병을 맡거나 추가 인력을 사적으로 고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간병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 경우 간병비 지출뿐 아니라 소득 감소까지 겹치며 가계 부담은 더욱 커진다. 장기화될 경우 부채 증가나 빈곤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등 공적 대안이 확대되고 있으나 공급량과 적용 범위에 한계가 있어 필요한 환자에게 즉시 제공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경제적 압박과 돌봄 스트레스가 결합되면서 가족 갈등, 우울, 번아웃은 물론 극단적 사건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에서도 제도 개선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서미화 의원은 지난 2월 5일 간병비를 건강보험 급여에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과 의료급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입원 환자 간병을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의 급여 항목으로 명시하고 간병비를 공적 보장 체계에 포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본인부담금을 전부 또는 일부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서 의원은 “급증하는 간병 부담으로 한 가정이 파탄에 이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국가가 책임지는 간병 보장 체계를 구축해 ‘간병 파산’과 ‘간병 살인’이라는 표현이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은 고령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2007년부터 경찰청 범죄 통계에 ‘간병 살인’을 별도 동기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으며, 간병 지원 제도도 함께 강화해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