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사사건을 수행하다 보면 1심 선고 직후 변호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판결이 내려지고 나서야 비로소 “내 사건이 이렇게 마무리될 줄 몰랐다”며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들의 표정은 놀라우리만치 비슷하다. 억울함, 후회, 불안, 그리고 ‘이제 끝난 걸까’ 하는 절망이 뒤섞인 얼굴들이다.
그러나 형사사건을 오래 다루면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형사사건은 1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판결 직후부터 ‘진짜 싸움’이 시작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항소심은 단순한 재검토 절차가 아니다. 기존 판단의 타당성만을 되짚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자료와 변화된 태도를 바탕으로 사건을 다시 구성하는 재판이다. 1심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는 이유의 상당수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1심에서 불리한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절차가 항소심이다.
그러나 항소심은 시간을 되돌리는 재판이 아니다. 새로운 사실이나 증거를 제출할 수는 있지만 단순히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항소심은 1심이 어떠한 논리와 근거로 결론에 이르렀는지를 차근차근 해체하고, 그 빈틈에 새로운 설명과 정황을 채워 넣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재판부를 설득하는 핵심은 왜 1심이 그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먼저 이해하고, 그 전제가 잘못되었음을 차분하게 보여주는 데 있다.
필자는 항소심 사건을 맡으면 가장 먼저 1심 판결문과 피고인의 진술 사이의 간극을 확인한다. 판결문에는 재판부가 받아들인 사실관계와 판단이 명확히 드러나 있지만, 피고인은 그 과정을 전혀 다르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 차이를 정확히 짚어야 비로소 논리적 반박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히는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새로운 자료가 등장했거나, 1심에서 간과한 사실이 드러났거나, 피고인의 태도와 진정성이 눈에 띄게 변화했거나, 판단을 다시 평가할 충분한 근거가 마련된 경우다. 결국 항소심은 사건의 재구성이자 사람의 변화를 함께 보여주는 자리다.
형사재판에서 태도는 결코 가볍게 여길 요소가 아니다. 반성, 진지함, 책임을 인정하는 마음은 법원이 엄연히 평가하는 기준이다. 1심에서는 억울함 때문에 부인하던 피고인이 항소심에 이르러 비로소 잘못을 온전히 인정하고 피해자와 합의하거나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이러한 변화가 있을 때 재판부가 어떻게 응답하는지 여러 번 지켜봤다. 실형이 선고되었던 사건이 집행유예로 바뀌거나, 구속되었던 피고인이 석방되는 일도 적지 않다. 재판부는 ‘달라진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변화의 이유와 과정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렇기에 항소심에서 중요한 것은 논리뿐 아니라 정확한 사실관계, 그리고 진정성 있는 태도다.
항소심을 준비하며 필자는 더 철저하고 더 집요하게, 때로는 피고인보다 더 피고인의 입장에서 싸운다. 항소심은 단순한 두 번째 기회가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말할 수 있는 마지막 과정이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사람, 설명할 기회를 놓친 사람, 진심을 보여주지 못했던 사람에게 항소심은 다시 삶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 단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변호인은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을 다시 세우는 동반자에 가깝다. 항소심은 어렵지만 결코 희망이 없는 절차가 아니다. 준비하고, 바로잡고, 진심을 담아 싸우면 판결은 달라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