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시사법률>을 구독하고 계신 독자들로부터 마약 사건과 관련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하나 있다. 바로 “변호사님, 제 사건은 마약의 양이 너무 많아서 이미 끝난 것 아닌가요?”라는 질문이다. 특히 마약의 무게가 쟁점이 되는 사건에 연루된 이들일수록 이 질문을 반복해서 던진다.
수사기록에 적힌 수치, 압수조서에 기재된 무게, 감정서에 등장하는 숫자 하나만을 보고 이미 결론이 정해졌다고 체념해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마약 사건을 오랜 시간 다뤄온 실무자의 입장 에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점이 하나 있는데, 마약 사건은 숫자 하나만으로는 절대 결과를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검사로 재직하던 시절 상당 기간 마약 사건을 전담해 왔고, 마약 분야 공인전문검사 자격을 취득한 이후에는 관련 사건을 지속적으로 다뤄왔다. 현재는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마약 사건은 여전히 주요 한 필자의 업무 영역 중 하나다. 그 과정에서 분명히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이 있는데, 마약 사건에서 핵심은 ‘얼마나 많은 양이 나왔느냐’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무게가 어떤 과정과 기준을 통해 산출됐는지, 그리고 그 수치가 피의자의 실제 행위와 어떤 관련성을 갖는지다.
이른바 ‘마약 무게 사건’을 다룰 때에는 이 무게가 실제 유통이나 투약을 전제로 한 결과인지, 아니면 감정 방식이나 계산 과정에서 외형적으로 부풀려진 수치인지를 가장 중요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수사 단계에서는 마약의 순수 성분과 관계없이 혼합물 전체를 기준으로 무게를 산정하거나, 당시 보관 상태 그대로를 감정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방식으로 산출된 숫자는 기록상으로는 커 보이지만, 반드시 사건의 실질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단정할 수 는 없다. 그래서 마약 사건에서는 감정 방식, 보관 상태, 희석·혼합 여부, 실제 사용 가능성, 그리고 피의자가 어느 범위까지 이를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하나하나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 과정이 생략된 채 숫자만 놓고 판단하면 사건의 구조는 지나치게 단순화되고, 때로는 왜곡되기 쉽다. 문제는 많은 피고인들이 이러한 구조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어차피 양이 많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방어를 포기해 버린다는 점이다.
필자가 만났던 한 의뢰인이 왜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방어하지 않았는지 묻는 필자에게 이렇게 답했던 것이 떠오른다. “찾아보니 이 정도면 실형일 것 같아서, 그냥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하지만 필자가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니, 의뢰인에게 적용된 혐의 중 유통이나 주도적 관여와는 거리가 있는 사정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럼에도 말을 아낀 결과 분명 해소할 수 있었던 혐의까지 함께 받게 된 것이다.
마약 사 건에서 말을 포기하는 순간, 사건은 숫자와 전과로 남는다. 반대로 기록을 분석하고 구조를 다시 세우면 이야기 는 달라질 수 있다. 필자는 마약 공인전문검사로서 수많은 마약 사건을 경험했다. 그래서 마약 사건일수록 감정이 아니라 정확하고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 되었다.
억울함만을 앞세우는 태도도, 반대로 체념해 침묵하는 태도도 결과를 바꾸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법은 행위의 실질과 책임의 범위를 따져 묻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더시사법률>을 통해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 당신의 사건은 아직 끝난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저울이 보여주는 숫자를 바꾸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압도되어 남은 인생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마약 사건은 분명 사회적으로 중한 사건이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차갑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지른 죄의 무게 만큼만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은 어느 사건이나 동일하다.
죄가 되는 부분과 아닌 부분의 경계를 구분하고, 사건의 구조를 파악해 법정에서 설명하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이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내 사건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 고 있다면, 숫자 뒤에 가려진 이야기가 있진 않았는지를 떠올리며 한 번쯤은 기록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 구조를 제대로 설명해 준 사람이 있었는지도 짚어볼 문제이다. 마약 사건은 무게로 시작될 수는 있어도, 무게로 끝나지는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