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월 4일 새벽, 살을 에는 듯한 한겨울 추위 속 부산 낙동강변 갈대숲에서 30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상의와 속옷은 목까지 말려 올라가 있었고, 하의는 반쯤 벗겨진 상태였다. 시신의 상태만 놓고 보면 성폭행을 동반한 강력범죄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현장에서 유일하게 남은 단서는 함께 있던 남성 A씨의 진술이었다. 그는 당시 피해 여성과 이른바 ‘카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여성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차량 뒷좌석에 누워있던 자신을 괴한 두명이 덮쳤고, 이후 돌아온 여성을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는 것이다.
A씨는 범인 중 한 명과 낙동강 물속에서 격투를 벌이다 손목을 묶고 있던 공업용 테이프가 풀리면서 가까스로 도망쳤다고 진술했다. 범인들이 자신을 결박하려 하자 차량 트렁크에 테이프가 있다고 직접 알려줬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같은 진술은 사건 초기 수사의 핵심 근거가 됐다.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A씨가 기억하는 범인의 특징은 단순했다. 한 명은 키가 컸고 다른 한 명은 작았다는 정도였다. 이 같은 인상착의는 당시 낙동강변 일대에서 잇따라 발생하던 강도상해 사건의 범인들의 인상착의와 흡사했다. 사람들은 이 일련의 사건을 ‘엄궁동 2인조 사건’이라고 불렀다. 엄궁동 2인조는 현장마다 지문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고 수사는 좀처럼 진척되지 않았다.
현장에서 약 30m 떨어진 지점에서는 체액이 묻은 손수건 하나가 발견됐다. 초기 검사에서는 혈액형이 A형으로 나왔지만 재검사 결과 AB형 반응이 나왔다. 손수건이 범인의 것이라면 범인 중 한 명의 혈액형이 A형 또는 AB형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피해 남성 차량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을 분석한 결과 피해 남성의 혈액형은 A형, 피해 여성은 B형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 같은 단서만으로는 범인을 특정하기 어려웠다. 경찰은 A씨의 진술을 토대로 약 6개월간 수사를 이어갔지만 결정적인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사건 발생 약 1년 10개월 뒤인 1991년 11월, 뜻밖의 계기로 수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부산 사하경찰서는 을숙도 공터에서 무면허로 운전 교습을 하던 중 공무원을 사칭한 사람에게 돈을 빼앗겼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경찰에 붙잡힌 인물은 최씨였다.
그는 당시 청년봉사단원으로 자연보호 활동을 하다 을숙도에 차를 끌고 온 사람들에게 나가라고 단속 했더니 30000원을 그에게 주었고 얼떨결에 그 돈을 받았던 것이 화근이 됐다. 경찰은 최씨를 불법적으로 임의동행해 조사했고, 엄궁동 2인조 사건의 범인으로 확신한 상태에서 수사를 진행했다.
고문과 강압적인 추궁이 이어졌다. ‘공범이 있지 않느냐’는 압박 속에서 최씨는 결국 친구였던 장씨의
이름을 언급했고 두 사람은 순식간에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됐다.
최씨와 장씨는 수사 초기부터 재판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라고 주장했다. 폭행과 물고문, 쇠파이프에 다리를 끼운 채 거꾸로 매다는 행위, 장시간 수면 박탈등이 있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1심과 2심, 대법원까지 이어진 재판에서 이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에게는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항소심부터는 당시 변호사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를 맡았다. 문 대통령은 훗날 방송에 출연해 이 사건을 “35년 변호사 생활 중 가장 한으로 남는 사건”이라고 회고했다.
문 변호사는 당시 장씨가 강력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말했다. 장씨의 시력이 장애에 가까울 정도로 나빴다는 점은 최씨도 알고 있었다. 시력표의 가장 큰 글씨조차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음에도 최씨는 형사들로부터 ‘자백하면 가혹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공사’에 속아 장씨를 공범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었다 한다.
당시에는 DNA 분석이나 CCTV 같은 과학수사 기법이 보편화 되지 않았고, 자백이 수사의 핵심 증거로 활용되던 시기였다. 강압수사가 반복되던 구조적 배경이었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두 사람은 2013년, 21년간의 수감 생활 끝에 모범수로 가석방됐다. 이후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2017년 5월 재심을 청구했다.
장씨의 어머니가 끝까지 보관해 온 사건 기록이 재심의 단초가 됐다. 재심 과정에서 두 사람은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과 검사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말로 일관했다. 무기징역을 구형했던 담당 검사는 끝내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법원이 아홉 차례에 걸쳐 증인 소환장을 보냈지만 모두 ‘폐문 부재’ 또는 ‘이사 불명’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2021년 1월, 검찰은 최씨와 장씨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이어 법원은 두 사람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최씨의 공무원 사칭 사건에 대해서는 선고를 유예했다. 피해 여성과 함께 괴한들의 습격을 받았다가 도망친 남성 A씨는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였지만, 동시에 진범일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범행 현장을 벗어나 구조됐음에도 즉시 신고하지 않고 개인적인 행동을 우선한 점, 그가 설명한 범행 당시 상황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사망한 피해자의 시신을 끌고 이동한 흔적 역시 두 명이 아닌 한 명의 범행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럼에도 경찰은 이러한 의문점을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채 수사를 종결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재수사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강도살인 혐의의 공소시효 15년이 이미 오래전에 만료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무고한 시민이 고문에 못 이겨 살인죄를 자백하고 21년간 옥살이를 한 뒤에야 무죄가 확정된 사법 오판 사건으로 기록됐다. 동시에 정작 피해자를 살해한 진범은 끝내 밝혀지지 않은 채 남았다. 유일한 목격자였던 A씨 역시 현재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