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사업 투자를 미끼로 10여 명에게 수십억 원을 가로챈 40대 여성이 항소심에서 오히려 더 무거운 형을 선고받았다. 피해액 중 상당 부분을 변제했음에도 형량이 늘어난 것이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고법 제주 제1형사부(재판장 송오섭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A씨(40대·여)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1심 징역 2년 6개월을 파기하고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023년 5월쯤 “중고차 매매상사 딜러들에게 매입 자금을 빌려주면 원금을 보장하고 매월 20%의 수익을 지급하겠다”고 속여 피해자 12명으로부터 282회에 걸쳐 총 27억8000만 원을 편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같은 해 9월에는 지인을 상대로 “모 은행 지점장이 급전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고이율로 돈을 빌려주고 있다”고 속여 금융상품 투자 명목으로 58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도 함께 인정됐다.
조사 결과 A씨는 편취한 자금을 가상화폐 투자나 개인 채무 변제 등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소사실은 모두 인정했으며, 전체 피해액 가운데 약 20억 원을 변제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일부 피해자들로부터는 끝내 용서를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형법 제51조는 양형 판단 기준으로 범행의 동기와 수단, 결과, 범행 후의 정황, 피해자와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피해 변제나 합의는 ‘범행 후의 정황’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유리한 정상으로 분류된다. 실제로 법원은 피해 회복이 이뤄진 경우 이를 감형 사유로 참작해 왔다.
그러나 판례는 피해 변제가 형을 좌우하는 결정적 사정은 아니라고 일관되게 판단해 왔다.
실제 2020년 대전고법은 “피해 변제는 가해자가 마땅히 이행해야 할 손해배상의무를 이행한 것에 불과하다”며 “그로 인해 민사적 정의가 일정 부분 회복될 수는 있으나, 이미 발생한 범죄가 소멸되거나 형사적 관점에서의 사회적 정의가 온전히 회복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해 변제는 범죄 결과의 불법성을 사후적으로 완화하는 정도의 양형 요소에 불과할 뿐, 행위책임의 원칙에 따른 가벌성이 현저히 감경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아울러 “피해 변제나 처벌불원 의사를 다른 양형 요소를 압도할 정도로 과도하게 평가하는 관행은 ‘인질사법’이라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며, 이를 다른 양형 요소와 동등한 수준에서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에서도 항소심 재판부가 주목한 것은 피해 변제 자체보다 범행의 구조와 규모였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서 범행 기간과 횟수, 피해자 수, 편취 금액 규모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죄질과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판단했다.
피해자는 12명, 범행 횟수는 282회, 전체 피해액은 27억8000만 원에 이른다는 점이 강조됐다.
특히 이 사건은 단발성 범행이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 다수의 피해자를 상대로 반복적·계획적으로 이뤄진 전형적인 고액 투자사기에 해당한다고 봤다.
적용 법조 역시 양형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이 사건에서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혐의가 적용됐다. 특경법은 사기 범행으로 취득한 이득액이 5억 원 이상일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법정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항소심은 이러한 법정형 체계에 비춰볼 때, 1심이 선고한 징역 2년 6개월은 특경법의 취지에 비해 가볍다고 판단했다.
법무법인 민 박세희 변호사는 “형사재판에서 피해 변제는 분명 중요한 양형 요소이지만 어디까지나 여러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며 “특경법이 적용되는 고액 사기 사건의 경우 범행의 반복성, 피해자 수, 전체 피해 규모와 같은 행위 자체의 불법성과 책임 정도가 더 중하게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피해 회복이 이뤄졌더라도 잔여 피해가 크고 실질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한 피해자가 다수인 경우 감형의 결정적 사유로 보기는 어렵다”며 “‘얼마를 갚았느냐’보다 ‘어떤 범죄를, 어떤 방식으로 저질렀느냐’를 중심에 두겠다는 최근 항소심의 양형 기조를 보여준 준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