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정 시설 안에서 지내는 시간은 바깥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간다. 외부와의 연락은 제한되고, 단 한 장의 서류라도 수용자에게 전달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단계가 많은 까닭이다. 그렇기 때문에 판결 선고 사실이나 재판 일정이 제때 전달되지 않거나 가족과의 소통이 끊긴 상태에서 항소 기간이 지나는 일은 생각보다 종종 일어난다
“이미 항소 기간이 지났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순간, 수많은 수형자들은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건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번 지나간 항소 기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을 이미 여러 차례 들어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담을 하다 보면 간혹 “판결이 나온 줄 몰랐는데, 이제 아무 방법이 없는 건가요?”라고 묻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정말 안타까운 상황이기에, 이에 대한 답변을 하기란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희망을 쉽게 말할 수도, 그렇다고 냉정한 현실만을 단정해서 말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형사사건은 판결 선고일로부터 7일 이내에 항소하지 않으면 그대로 형이 확정된다. 이 기간은 결코 길지 않고, 한번 지나가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소 기간을 놓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모든 길이 막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법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그 문을 다시 두드릴 수 있는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바로 ‘상소권 회복’이다. 형사소송법 제345조는 상소권 회복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다. “상소할 수 있는 자가 자기 또는 대리인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상소 제기 기간 내에 상소를 하지 못한 경우에는 상소권 회복의 청구를 할 수 있다.”
여기서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상소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누구인지에 대한 점인데, 법령에 따르면 상소할 수 있는 자의 범위는 피고인 본인은 물론, 그의 법정대리인,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매, 변호인까지 포함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바로 ‘책임질 수 없는 사유’가 무엇인지이다. 상소권 회복은 단순히 억울함을 풀어주는 제도가 아니다. 본 제도에서 법원이 가장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기준은 ‘왜 항소하지 못했는가’, 그리고 그 이유가 정말 ‘피고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사정이었는가’이다. 수많은 수형자들이 기대를 거는 사유들은 안타깝게도 통상 이 문턱을 넘기기 어렵다.
대법원은 질병으로 입원했거나 거동이 불편했다는 사정, 주소 변경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판결 선고를 알지 못한 경우나 교도소 직원이 충분히 도와주지 않았다는 주장, 법정 소란 등으로 판결 주문을 잘못 들었다는 사정 등은 상소권 회복 사유로 인정하지 않은 바 있다. 또한 항소 기한을 놓친 사정이 개인의 생활상의 사정에 기인한 경우, 법원은 이를 피고인의 책임 범위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기에 상소권 회복의 소를 제기한다 해도 실익을 기대하긴 힘들다.
그렇다면 이 문은 언제 열릴 수 있을까? 핵심은 ‘절차 그 자체에 중대한 하자가 있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가령공소장이나 소환장이 적법하게 소환되었는지, 피고인의 신병 확보 시도가 충분했는지, 불출석 상태에서 재판이 진행되었다면 법이 요구하는 공시송달 절차를 제대로 거쳤는지 등이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라고 볼 수 있다.
실무상 상소권 회복이 인용되는 경우는 피고인이 항소를 포기한 사람이 아니라 ‘항소할 기회 자체를 보장받지 못한 경우’에 가깝다. 기관의 절차 진행 과정상 피고인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는 사정이 명확히 드러날 때에만 법은 예외를 허용한다.
‘상소권 회복’이라는 제도는 많은 이들에게 마지막 희망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희망’과 같은 막연한 표현보다는 ‘사실의 검증’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감정이 아닌 정확한 절차와 문서, 날짜와 같은 사실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교도소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사건 기록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재판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차분히 확인하는 일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 판단은 혼자 내리기보다는, 절차를 잘 아는 전문가의 시선을 빌릴 때 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법은 기적을 약속하진 않지만, 국가 또는 사법기관의 책임으로 기회가 박탈된 경우까지 외면하진 않는다. 상소권 회복은 그 경계에 놓인 제도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겐 이미 지나간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출발선이 될 수도 있다. 법을 안다는 것은 희망을 부풀리는 것이 아닌, 현실 속에서 갈 수 있는 길과 갈 수 없는 길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 구분이야말로 다가올 내일을 준비하는 데에 있어 가장 단단한 토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