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처벌은 무용지물?…사기범은 호화생활, 피해자는 고통 지속

범죄수익 환수·피해배상 공백 속 ‘제도적 방치’
사기 범죄 반복…“피해자 회복에 초점 맞춰야”

 

사기 범죄에 대해 형사처벌이 내려진 이후에도 피해자들의 일상 회복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형이 확정된 가해자는 사회로 복귀하지만, 피해자들은 장기간의 채무와 생활고에 놓이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과거 ‘청담동 주식부자’로 불리며 대규모 투자 사기로 유죄가 확정된 이희진 씨 사건의 피해자 상당수는 사건 발생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채무와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며 생활고를 이어가고 있다.

 

한 피해자는 2015년 이 씨의 권유로 10억 원을 투자했다가 대부분의 자금을 잃었다. 이후 야간 경비 근무와 일용직 노동을 병행하며 채무를 상환해왔고 10년 만에 원금에 가까운 금액을 갚았지만 그 과정에서 건강이 악화되고 가정도 해체됐다.

 

또 다른 피해자 역시 “전업으로 투자하라”는 권유를 믿고 직장을 그만뒀다가 전 재산 1억5000만 원을 잃었다.

 

전세자금까지 소진한 그는 지하방으로 거처를 옮겼고 결혼을 앞두고 있던 약혼자와의 관계도 끝났다. 이후 대인기피증과 심각한 건강 악화를 겪었으며 보험까지 해지한 상태에서 암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희진 씨 사건의 피해자는 230여 명에 이르지만, 상당수는 투자금의 일부도 회수하지 못한 채 각자의 삶을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이 씨는 실형을 마친 뒤 사회로 복귀한 이후에도 고가 명품 소비와 외제차, 고급 주거 공간에서의 일상 등을 SNS를 통해 공개해왔다. 해외여행과 고급 식사 장면도 지속적으로 노출됐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 씨는 본인 명의가 아닌 배우자 가족이나 법인 명의 등을 활용해 재산을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 씨의 추정 재산 규모가 수백억 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수백억 원대 사기 피해를 낳은 사건의 가해자가 처벌 이후에도 경제적 여유를 과시하는 모습이 확인되면서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정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허탈감과 분노가 커지고 있다.

 

 

사기 범죄는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사기 범죄 발생 건수는 42만1421건으로 사상 처음으로 40만 건을 넘어섰다. 이는 2021년 29만4075건과 비교해 약 50% 증가한 수치다.

 

코로나19 이후 고금리·고물가 상황이 이어지면서 주식, 가상자산, 비상장 투자 등을 둘러싼 사기 범죄가 급증했지만, 수사·처벌 구조는 이에 상응하는 변화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기 사건 수는 늘었지만 재판에 넘겨지는 비율과 실형·집행유예 선고 비율은 수년째 큰 변동이 없는 상태다.

 

수사 단계에서 상당수 사기 사건이 불송치나 불기소로 종결되는 구조 역시 피해자 구제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다수 피해자 사건의 경우 입증 부담이 크고, 가해자가 변제 의사를 주장할 경우 구속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는 불구속 상태로 재산을 은닉하거나 추가 범행에 나설 여지를 확보하게 된다.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더라도 피해 회복은 별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현행 제도상 몰수·추징금은 원칙적으로 국고에 귀속되며, 피해자가 이를 직접 환급받을 수 있는 절차는 제한적이다.

 

피해자가 투자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별도의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하지만, 소송 비용과 장기간의 절차 부담으로 이를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설령 승소하더라도 가해자의 재산 은닉이나 명의 분산으로 집행이 어려워지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부패재산몰수법 등 일부 제도는 범죄수익의 피해자 환급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나, 피해액 산정의 어려움과 수사기관의 소극적 대응으로 실효성은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이희진 씨 사건에서도 수백억 원대 재산이 몰수·추징됐지만, 피해자 다수는 1인당 평균 1000만 원 수준의 배상 판결조차 집행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사기범들이 형기를 마친 뒤 경제 활동이 가능하고 범죄수익 상당 부분을 유지할 수 있다면, 사기 범죄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기 전력자에 대한 금융·투자 활동 제한, 범죄수익 전면 환수 원칙 강화, 형사재판 단계에서 피해 배상을 연계하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무법인 태율 김상균 변호사는 “형사처벌 이후에도 가해자가 기존의 생활을 유지하고, 피해자가 장기간 회복하지 못하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추가 피해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사기로 인한 피해가 국고 귀속과 형기 종료로만 정리되는 현 제도는 피해 회복 측면에서 한계가 명확하다”며 “사기를 개인의 일탈이 아닌 구조적 범죄로 보고 제도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