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 살해 후 시신 김치냉장고 은닉…반복되는 ‘관계형 살인’의 구조

관계 갈등이 범행으로 이어지는 구조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시신을 김치냉장고에 숨겨 장기간 은닉한 40대 남성에게 징역 30년이 선고되면서 연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른바 ‘관계형 살인’의 구조적 배경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29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제1형사부는 살인과 시체유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A씨는 2024년 10월 전북 군산시 조촌동의 한 빌라에서 당시 교제하던 B씨의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김치냉장고에 넣어 숨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 과정에서는 범행 이후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약 8800만원 상당의 대출을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A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근간을 이루는 절대적 보호 대상”이라며 “연인을 살해한 뒤 시신을 장기간 은닉하고 피해자를 사칭해 가족을 기망한 행위는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밝혔다.

 

이어 “11개월 동안 김치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하며 고인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했고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피고인을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살인은 범행 동기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나뉜다. 우발적 폭력이나 경제적 갈등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에는 연인이나 가족 등 가까운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른바 ‘관계형 살인’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사건들을 보면 이러한 범죄의 배경에는 관계 갈등의 장기화나 관계 노출에 대한 불안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갈등이 누적되거나 관계가 외부에 드러날 상황에 놓이면서 극단적인 범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2024년 발생한 한 관계형 살인 사건에서도 유사한 구조가 확인됐다. 피고인 B씨는 같은 해 10월 25일 오후 3시 14분부터 3시 52분 사이 경기 과천시의 한 건물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 안에서 내연 관계인 피해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 도중 피해자가 “불륜 사실을 알리겠다”는 취지의 말을 하자 피고인은 압박에서 벗어날 방법이 살해뿐이라고 판단했다.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입을 맞추며 주의를 돌린 뒤 차량 바닥에 있던 노트북 도난방지용 고정줄을 이용해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범행 이후 피고인은 시신을 은폐하기로 마음먹었다. 같은 날 오후 군 부대 사무실과 자재실을 돌아다니며 톱과 칼, 망치, 청테이프, 비닐봉투 등을 챙겼고 이후 공사장으로 이동해 피해자의 시신을 훼손하고 여러 부위로 절단했다.

 

다음 날에는 차량을 이용해 서울과 구리, 가평, 춘천 등을 거쳐 강원 화천군으로 이동한 뒤 북한강 인근에서 시신이 담긴 비닐봉투를 강물에 던지는 방식으로 은닉했다.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은 국가와 사회가 보호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법익”이라며 “피고인은 내연 관계에 있던 피해자가 관계를 밝히려 하자 이를 막기 위해 살해했고 이후 시신을 절단해 강물에 버렸다”고 판단하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또 “범행 동기와 방법, 범행 이후의 행태를 종합하면 죄책이 매우 중대하다”고 판시했다.

 

범행 이후 피고인은 피해자가 살아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가족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등 생활 반응을 가장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의 출입증을 이용해 피해자가 퇴근한 것처럼 꾸미고 휴대전화 비행기 모드를 반복적으로 설정하는 등 증거를 은폐하려 했다”며 “이 같은 정황은 우발적 범행을 저지른 사람의 모습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연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살인의 경우 갈등이 누적되는 과정에서 위험 신호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집착적 통제, 관계 노출에 대한 극단적 불안, 경제 문제와 결합된 갈등, 지속적인 협박이나 위협 등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연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살인은 단순한 충동 범죄라기보다 관계 갈등이 장기간 누적되면서 폭력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관계 노출이나 이별 갈등이 격화될 때 폭력 위험이 높아지는 경향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는 살인 이후 시신 은닉이나 피해자 사칭 같은 범행 은폐가 결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라며 “수사 과정에서도 이런 유형의 사건은 단순 실종 사건으로 시작해 장기간 은폐된 뒤 발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인 간 폭력이나 스토킹, 협박 등 초기 단계의 위험 신호가 반복될 경우 이를 개인 간 갈등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제도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