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가입원서 위조 혐의 노조위원장...항소심 무죄 왜?

위조 여부보다 ‘누가 작성했는지가 핵심

 

‘노조 가입원서 위조’ 혐의로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던 한국노총 산하 한 노조위원장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가입원서가 위조됐을 가능성과 피고인이 실제 위조 행위자라는 점은 별개의 문제라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직접 위조했거나 공모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 제5-2형사항소부는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행사 혐의로 기소된 노조위원장 A씨에 대해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1심은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했다.

 

A씨는 2020년 3월 경기 화성시 향남읍에 위치한 노조 사무실에서 조합원 수를 늘려 사용자와의 교섭권을 확보하기 위해 B씨와 C씨 명의의 노조 가입원서를 허위로 작성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원심은 “가입원서가 실제 당사자들에 의해 작성되지 않았고, 작성에 대한 동의도 없었다는 점은 인정된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문서 자체의 위조 가능성과 피고인이 그 위조 행위를 했다는 점은 엄격히 구별돼야 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직접 가입원서를 작성했거나, 다른 사람과 공모해 위조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당시 노조 가입원서가 위원장뿐 아니라 부위원장, 감사, 사무국장 등 여러 집행부 인사를 통해 수집·관리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가입원서가 노조에 유입된 경로 역시 명확히 특정되지 않은 만큼, 다른 사람이 위조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공모 관계를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도 부족하다고 봤다.

 

피고인의 진술 태도에 대해서도 항소심은 신중한 판단을 내렸다. 원심은 A씨의 진술 변화가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봤지만, 항소심은 ‘동의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이 곧바로 ‘피고인이 직접 작성했다’는 자백으로 해석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진술이 다소 석연치 않더라도 그것만으로 범행을 인정할 수는 없다는 취지다.

 

조합비를 대신 납부한 사정 역시 위조의 직접 증거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회사와의 갈등과 감시 등으로 조합원 모집이 쉽지 않았던 점, 다른 조합원들의 조합비도 대납한 사례가 있었던 점, 대납 금액이 1인당 1만~2만 원에 불과한 소액이었다는 점 등을 종합해 조합비 대납만으로 위조 행위의 주체를 특정할 수는 없다고 봤다.

 

위조사문서 행사 혐의에 대해서도 증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공소사실에 기재된 가입원서 제출 시점과 실제 제출 경위 사이에 차이가 있고, 피고인이 가입원서가 위조됐다는 사실을 인식한 상태에서 이를 행사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필적 감정 결과 역시 결정적인 증거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제의 가입원서가 원본이 아닌 사본이었던 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에서도 작성자 동일 여부를 확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결과가 나온 점, 항소심 단계의 감정 역시 유사성 판단에 그친 점 등을 고려하면 작성자 특정의 근거로 삼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결국 가입원서가 위조됐을 가능성 자체보다, 피고인이 그 위조의 행위자라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는지가 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판단했다. 다른 사람이 위조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공모를 인정할 증거도 부족한 이상,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법무법인 로유의 배희정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대해 “항소심은 문서가 실제 작성자 본인에 의해 작성되지 않았을 가능성과 피고인이 위조자라는 점을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위조 가능성만으로 노조위원장을 곧바로 위조 행위자로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배 변호사는 “가입원서가 여러 집행부 인사를 통해 수집·관리됐고 유입 경로도 특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위조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 핵심”이라며 “피고인의 진술이나 조합비 대납 사실, 필적 감정 결과 역시 위조의 직접 증거로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무죄 판결은 ‘위조가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피고인이 위조자라는 점이 형사재판의 기준에 따라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행위자 특정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한 판결”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