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의 전화 시간 5분(의정부교도소)

 

저는 일주일 중 한 번 있는 전화 시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허락된 시간은 단 5분뿐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익숙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이 힘든 생활도 잊어버린 채 짧고 소중한 시간 속으로 빠져들곤 합니다.

 

학창 시절부터 아버지는 언제나 제 편이 되어주셨습니다. 회사 일로 바쁘고 피곤하실 텐데도 아들 기죽지 말라며 학부모회 임원까지 맡으셨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하면 늘 나서서 도와주셨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을 때도 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원과 지지 덕분에 원하는 과에 입학한 것은 물론 졸업까지 무사히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사회에서 그릇된 행동을 하고 교도소에 들어온 후, 아버지와의 첫 접견 때가 떠오릅니다. 며칠을 못 주무셨는지 충혈되어 있던 눈, 말씀하실 때마다 사시나무 떨듯 떨리던 손, 어느새 흰서리가 가득 내린 머리카락을 보고 죄스러운 마음에 자리에 앉아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버지는 그 순간에도 저에게 “걱정하지 마라. 아프지 말고 힘내고 있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아버지는 동생과 함께 편의점 일을 하시며 하루 19시간의 고된 노동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젊은 저도 하루 12시간 이상 일을 하면 피곤함에 눈을 잘 뜨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못난 저를 대신해, 70을 바라보는 고령이심에도 하루도 쉬지 못하고 가게를 봐주고 계십니다.

 

사회에 있었을 때 아버지께서 편의점 근무를 하시면, 제가 가서 2~3시간 정도 대신 봐드리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 아버지께서 참 좋아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퇴근길에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순대국, 간짜장, 떡볶이 등을 사 들고 갔고,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매장 의자에 앉아 같이 먹자고 하시며 자리를 내주셨습니다. 그렇게 둘이 앉아 늦은 저녁을 먹었던 시간이,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저와 아버지가 근무복을 입고 카운터에 서서 손님을 맞을 때면 손님들은 아버지를 닮아 아들도 친절하다고 따뜻하게 칭찬해 주시곤 했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얼굴에 떠오르던 밝은 미소가 그립습니다. 아버지의 손길, 냄새, 해주시던 음식들도 너무 그립습니다.

 

다시 사회로 나가게 된다면 우리 아버지 좋아하시는 음식 사드리며 살고 싶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쉴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우리 아버지께 용돈을 드릴 수 있는 착한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아버지, 너무나 사랑합니다. 제 곁에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