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엘리엇 ISDS 취소소송 승소…1600억 배상책임 사라져

취소 인용률 3% ‘바늘구멍’ 뚫어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의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우리 정부가 영국 법원 취소소송에서 승소했다. 이에 따라 약 1600억 원에 달하던 배상 책임은 일단 사라지게 됐다.

 

정부는 23일 "오후 7시 30분쯤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 사모펀드 엘리엇을 상대로 한 ISDS 사건 중재판정 영국 법원 취소소송에서 승소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정부에 배상 책임을 인정했던 종전 판정은 더 이상 그대로 유지될 수 없게 됐다.

 

이번 분쟁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서 시작됐다. 당시 삼성물산 주주였던 엘리엇은 합병에 반대했지만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합병이 성사됐다. 엘리엇은 “국민연금의 찬성 결정에는 정부의 부당한 압력이 있었다”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근거로 국제중재를 제기했다.

 

2023년 6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는 엘리엇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정부가 약 690억 원과 지연이자 등을 합쳐 총 1600억 원가량을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정부는 이에 불복해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취소소송을 냈다.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은 “국민연금공단을 국가기관으로 볼 수 있느냐”였다. ISDS에서 정부 책임이 인정되려면, 문제된 행위가 ‘국가기관’에 의해 이뤄진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국 법원은 정부 손을 들어줬다. 국민연금공단은 정부와 별도의 법인격을 가진 기관이고, 치안·국방 같은 국가 핵심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도 아니며, 일상적 의사결정이 정부에 완전히 종속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다.

 

국민연금공단 자체를 곧바로 ‘국가기관’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법원은 당시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의 개입 행위는 FTA상 문제될 수 있는 ‘관련 조치’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앞으로 다시 열릴 중재 절차에서는 국민연금공단이 아니라,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의 행위만을 기준으로 국가의 배상 책임을 따지게 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영국 법원에서 중재판정 취소가 인용되는 비율은 약 3%에 불과하다”며 “8년간의 대응 끝에 의미 있는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1600억 원대 배상 책임은 일단 사라졌지만, 엘리엇이 항소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정부는 추가 법적 대응에 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정부는 최근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외환은행 매각 관련 ISDS 취소소송에서도 승소해 약 4000억 원의 배상 책임을 없앤 바 있다. 잇따른 취소소송 승소로 대규모 국제분쟁 부담을 줄였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