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호사님, 저는 정말 고액 알바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제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는 걸 꿈에라도 알았겠습니까?”
구치소 접견실의 차가운 정적 속에서 가장 많이 울려 퍼지는 절규다. 대개 경제적 곤궁 속에서 ‘채권 회수 업무’나 ‘단순 현금 전달’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진 이들은 1심에서 ‘사기죄’ 또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이라는 무거운 판결을 받고 나서야 자신이 빠진 덫의 깊이를 깨닫는다.
변호사로서 그들의 눈을 마주하다 보면, 억울함 뒤에 숨겨진 막막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한순간에 피고인이 된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자각보다는 뒤늦게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되었다는 억울함이 배어있다.
그러나 수사 기록에는 피해 금액의 규모, 현금 수거 장면이 담긴 CCTV, 송금 내용과 이동 동선이 정리되어 있다. 법정은 개인의 사정이 아니라 그러한 객관적 정황을 중심으로 판단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 피고인의 절박한 호소는 차가운 증거의 벽에 가로막히곤 한다.
법정은 냉혹한 질문을 던진다. 피고인에게 ‘미필적 고의’가 있었느냐는 질문이다. 현장에서 피고인들이 가장 억울해하는 지점은 ‘고의성’이다. 본인은 정말 몰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정의 시각은 냉혹하다. 직접적인 범죄 의도가 없었더라도 “그 상황에서 무언가 불법적인 일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 않았느냐”라는 이른바 ‘미필적 고의’의 잣대를 들이댄다. 상식에 어긋나는 고액의 수당, 비정상적인 지시 경로,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는 듯한 행동들이 기록에 남는 순간, “몰랐다”라는 항변은 힘을 잃고 만다.
변호사인 내가 할 일은 바로 그 ‘인식의 간극’을 메우는 일이다. 1심에서 패소한 사건일수록 기록을 더욱 냉정하게 뜯어봐야 한다. 먼저, 당시 구인 광고의 구체적인 문구와 채용 과정에서의 허술함은 없었는지 살펴본다.
업체 관계자와 나눈 메시지 속에 들어가 있는 교묘한 기망 수법을 찾아내고, 피고인의 사회적 경험과 주관적 상황을 분 단위, 초 단위로 분석한다. 단순히 “몰랐다”라며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왜 몰랐을 수밖에 없었는지, 어떤 정보만이 제공되었는지 등을 구조적으로 정리하고 객관적 상황을 법의 언어로 번역해 재판부를 설득해야 한다.
변호인은 메시지 한 줄, 통화 한 통, 채용 과정의 설명 방식까지 세밀하게 살펴보며 피고인이 인식할 수 있었던 정보의 범위를 재구성한다. 때로는 사소해 보이는 대화 하나가 전체 판단의 방향을 바꾸는 실마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략적 대응과 더불어 죄명을 재검토하는 것도 변호사의 역할이다.
최근 실무에서는 가담 경위에 따라 ‘사기죄’가 아닌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으로 죄명을 변경하는 것이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사기죄의 무거운 형량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별법 위반 시 뒤따르는 ‘벌금 폭탄’과 ‘금융 거래 제한’ 같은 실질적인 불이익까지 고려한 입체적인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형량만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선고 이후의 삶까지 내다보는 전략이 요구된다.
진실은 스스로 드러나지 않는다. 법조계의 격언처럼 ‘사건의 정답은 기록에 있다’고들 하지만, 그 기록은 때로 수사기관의 관점에서만 작성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변호인은 기록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피고인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발로 뛰어야 한다.
그리고 피고인 스스로도 ‘그때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차분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기억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막연했던 억울함이 구체적인 사실로 정리되기도 한다. 철창 안에서 절망에 잠겨있기보다는 당시 본인의 인식이 어디까지였는지 변호인과 함께 기록을 복기하며 최선의 방어권을 행사해야 한다. 진실은 오직 포기하지 않는 자의 손길에 의해 증명되는 법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억울함이 담긴, 재판부의 마음을 움직일 ‘치밀한 항소이유서’를 쓰며 밤을 지새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