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가방을 해체해 다른 형태로 만드는 이른바 ‘리폼’ 행위가 상표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리폼 결과물이 거래·유통되는 ‘상품’인지 여부보다 상표가 출처 표시 기능을 수행했는지가 침해의 핵심 요소라고 봤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는 이날 루이비통이 리폼업자를 상대로 제기한 상표권 침해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 사건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특허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1·2심에서는 리폼업자의 상표권 침해가 인정된다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바 있다.
대법원은 먼저 상표법이 보호하는 핵심 이익이 ‘상표 자체’가 아니라 상품의 출처를 식별해 소비자의 혼동을 방지하는 데 있다는 점을 전제로 삼았다.
이어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이란 단순히 상표가 물리적으로 부착돼 있거나 외형상 노출되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봤다. 상표가 사용되었다고 평가되려면 그 행위가 거래 사회에서 상품의 출처를 표시하거나 광고·유통 과정에서 소비자의 인식을 형성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실관계에 비춰볼 때 리폼 제품에 루이비통 상표가 계속 표시돼 있더라도 그 상표가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출처를 오인하게 할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에서 리폼업자는 가방 소유자의 요청에 따라 기존 루이비통 가방을 해체해 새로운 형태로 제작한 뒤 완성품을 다시 해당 소유자에게 반환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리폼 과정에서 제3자에게 판매하거나 전시·광고한 사실은 없었고 리폼 결과물 역시 시장에 유통되지 않았다.
따라서 거래 상대방은 오직 원래의 가방 소유자이며 해당 소유자는 상표의 출처를 이미 알고 있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혼동이 발생할 여지가 없다는 논리다.
특히 대법원은 1·2심이 중시했던 ‘사업자 등록’과 ‘리폼 영업’이라는 요소를 상표 사용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리폼업자가 영업 형태로 활동했다는 사정만으로 상표법상 사용이 성립한다고 보면 개인적 사용을 매개로 한 다양한 위탁 행위가 과도하게 침해로 포섭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원심이 리폼 결과물을 ‘교환가치 있는 상품’으로 평가한 점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교환가치의 존재와 상표 사용은 동일선상에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개인적 사용을 목적으로 제작된 물건이 경제적 가치를 가질 수는 있으나 그것이 곧바로 시장에서 출처 표시 기능을 수행하는 상품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대법원은 나아가 이미 적법하게 유통된 정품 가방을 소유자가 개인적으로 개조·변형해 사용하는 행위까지 상표권 침해로 본다면 정당한 소유권 행사와 소비자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고 봤다. 상표권은 무한정 확장되는 권리가 아니라 거래 질서를 보호하는 범위 안에서만 행사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모든 리폼 행위를 포괄적으로 허용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리폼 결과물이 제3자에게 판매되거나 반복적으로 유통돼 출처 혼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경우, 또는 리폼업자가 상표를 이용해 자신의 상품이나 서비스로 오인하게 하는 경우에는 상표권 침해가 성립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안팍 박민규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명품 리폼을 둘러싼 분쟁에서 판단의 중심축을 ‘상표의 존재’에서 ‘상표의 기능’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향후 유사 사건에서는 리폼의 목적, 유통 여부, 소비자 혼동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났는지가 침해 판단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