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교도소서 ‘옥중 지휘’…마약왕 박왕열 국내 기소

인도범죄 한정 ‘특정성 원칙’ 적용…

 

필리핀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에서 국내로 대량의 마약을 밀반입·유통한 이른바 ‘마약왕’ 박왕열이 재판에 넘겨졌다. 해외 수용시설을 거점으로 한 조직형 마약 범죄 실체가 드러나면서 수사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22일 마약범죄 정부합동수사본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향정 혐의와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박왕열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다만 필리핀에서 발생한 ‘사탕수수밭 3명 살인 사건’은 이번 기소에서 제외됐다. 범죄인 인도 절차상 추가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른바 ‘특정성 원칙’에 따른 것으로, 인도된 피의자는 송환 당시 허용된 범죄에 한해 처벌할 수 있고 그 외 범죄는 상대국 동의를 받아야 한다.

 

헌법재판소 결정과 범죄인인도법 제42조의4도 같은 취지다. 인도 당시 특정되지 않은 범죄로 처벌하려면 해당 국가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 박왕열이 마약 범죄로 송환된 만큼 필리핀 내 살인 사건은 별도 범죄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수사 결과 박왕열은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에서도 텔레그램 등 메신저를 이용해 국내 마약 유통을 지휘한 것으로 조사됐다. 합수본은 해외 밀수 조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연결 구조를 확인하고 전담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는 지난 3월 박왕열이 국내로 송환되면서 속도를 냈다. 경찰이 사건을 송치한 이후 합수본이 조직 구조와 범행 경위를 집중적으로 규명했다.

 

특히 필리핀 현지 조사에서 조직 총책 3명이 모두 수용시설에 수감된 상태에서 범행을 이어온 사실이 확인됐다. 이들은 교도소 내 휴대전화를 이용해 조직원을 모집하고 국내 유통망을 운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지 수사 과정에서는 범행에 사용된 휴대전화 5대가 압수됐고 관련자 조사도 병행됐다. 수사 당국은 이들이 해외 수용시설이라는 환경을 이용해 송환을 지연시키면서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왕열은 마약 유통과 판매 혐의는 인정했지만 밀수 혐의는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투약 정황도 확인됐으나 범죄인 인도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이번 기소에서는 제외됐다. 이 부분 역시 필리핀 당국과의 추가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합수본은 인터폴 적색수배 상태인 공범들에 대해서도 법무부와 협력해 송환 절차를 진행 중이다. 아울러 필리핀 살인 사건에 대해서도 추가 기소가 가능하도록 현지 당국과 공조를 이어가고 있다.

 

박왕열은 2016년 10월 필리핀 사탕수수밭에서 한국인 3명을 살해한 혐의로 2020년 현지 당국에 검거됐다. 이후 2022년 징역 60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에도 텔레그램에서 ‘전세계’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마약 밀반입을 지휘한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 과정에서는 지속적인 마약 투약 정황도 드러났다. 송환 당시 간이 검사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에서 모두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 당국은 동남아를 거점으로 한 국내 마약 유통 구조가 상당 부분 확인된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해외 기반 마약 조직에 대한 추적과 단속을 확대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