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법무법인은 꽤 오랜 시간 <더시사법률> 지면을 통해 신문 구독자님들과 만나고 있다. 어떤 코너든 글을 기고하고 나면 읽고 나서 생긴 궁금증이나 저마다의 사연을 편하게 보내주실 수 있도록 우리 사무실 주소를 덧붙여 두는데, 돌아보면 그간 많은 양의 편지를 받았다. 그런데 보내주신 편지를 읽다 보면 느껴지는 것이 있다. 각자 연루된 사건은 다르지만, 이들이 넘어지게 된 계기는 꽤 비슷하다는 것이다. 감정이 무너져 버린 순간 잘못된 선택을 했다든가, 어떤 사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궁여지책으로 회피를 선택했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든가, 또는 한 번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그릇된 길로 발을 들였다든가 하는 식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사건의 전개나 양상은 다 다르겠지만,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면 대체로 이렇다. 범죄에 이르게 하는 기제라는 게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곁에서 지켜본바, 이들이 다시 일어서는 방식은 저마다 모두 달랐다. 그 놀라운 변칙성은 어떻게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고 다시 뿌리를 내리는 대자연의 신비와도 닮았다. 나는 구독자님들이 보내오는 편지를 종종 오래 들여다본다. 편지에는 사건 기록에서 볼 수 없는 것
형사사건을 오래 다루다 보면 한 가지 사실에 자주 생각이 머문다. '사람은 반드시 나쁜 마음을 품고 범행을 저질러야만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세심한 계획과 고의가 결합된 범죄도 존재한다. 그러나 내가 재판정에서 실제로 마주해 온 다수의 피고인은 악의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삶의 어느 지점이 미세하게 어긋났을 뿐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다가 어느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선택을 했고, 그 작은 균열이 커다란 사건으로 이 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판사로 재직하던 시절, 나는 법정에서 피고인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다. 그들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 그 이야기 속에는 수십 년 의 삶이 녹아있었겠지만 - 그 삶 을 온전히 들을 기회는 거의 없었다. 판사의 역할은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증거의 신빙성과 진술의 일관성을 검토하고 그 결과를 법적으로 분류하는 일에 가깝다. “이 사람이 어떤 이유와 과정을 거쳐 지금 여기에 서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은 마음속에만 남아있었다. 재판부의 임무는 결국 사건의 ‘사정’보다는 행위의 위법성과 책임을 엄정하게 판단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조인의 길을 오래 걷다 보니 필자는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판사로 있을 때가 사람이 더 단단해 보였다”는 말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법복을 입고 재판정을 바라볼 때는 세상이 놀랍도록 정리되어 보였다. 사람이 아니라 ‘사건’이 보이고, 그 사람의 감정이 아니라 ‘증거’가 보인다. 사실과 증거, 논리와 법리만으로 결론을 내리는 그 자리는 겉으로는 단단하고 흔들림 없어 보인다. 그러나 변호사가 된 지금, 나는 그 ‘정리된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 인간의 사정 위에 세워져 있었는지를 더 자주 느낀다. 판사로 있었을 때는 기록이 세상의 전부였다. 하지만 변호사가 되어보니 그 기록에 닿기 전 의뢰인의 시간과 그가 어떤 사정으로 그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 그 마음의 길을 먼저 보게 된다. 법정 안에서는 정리되어 있던 사건이 변호사에게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 판결문에 쓰인 문장은 단정하지만 그 몇 줄의 기록에 불과한 사정 뒤에는 한 사람의 가족, 삶의 무게, 그리고 수많은 감정이 있다. 판사의 일은 냉정하다. 결정해야 하고, 단호해야 한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사건이 책상 위에 쌓이고 각 사건의 피고인, 피해자, 변호인, 검사가 제각각의 입장을 내세운다. 그 속에
형사재판을 하다 보면 때로는 사건의 결과보다 의뢰인의 ‘변화’를 증명해야 하는 사건이 있다. 이번 사건이 바로 그랬다. 필자를 찾아온 것은 의뢰인이 아니라, 의뢰인의 가족들이었다. 사건의 1심 판결이 선고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가족들은 필자를 찾아와 간절하게 말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만들어 주세요.” 꽤 오랜 시간 면담을 통해 확인한 사건의 실체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의뢰인은 평소 알고 지내던 피해자를 감금하고 강간을 시도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된 상태였다. 기록을 살펴보니, 1심에서 의뢰인은 감금 혐의만 인정하고 강간미수 혐의는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과 강한 처벌 의사를 근거로, 의뢰인의 태도를 ‘책임 회피’로 판단했다. 반성의 부재,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 그의 대응이 판결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그 결과는 징역 2년의 실형이었다. 항소심을 준비하며 필자는 이 사건의 초점을 ‘사건’이 아닌 ‘사람’에 두었다. 형사재판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사실관계만이 아니다. 사건 이후의 태도, 반성, 그리고 피해자와의 관계 회복은 매우 중요한 사건의 열쇠다. 법은 냉정하지만, 그 냉정함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