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법무법인은 꽤 오랜 시간 <더시사법률> 지면을 통해 신문 구독자님들과 만나고 있다. 어떤 코너든 글을 기고하고 나면 읽고 나서 생긴 궁금증이나 저마다의 사연을 편하게 보내주실 수 있도록 우리 사무실 주소를 덧붙여 두는데, 돌아보면 그간 많은 양의 편지를 받았다.
그런데 보내주신 편지를 읽다 보면 느껴지는 것이 있다. 각자 연루된 사건은 다르지만, 이들이 넘어지게 된 계기는 꽤 비슷하다는 것이다. 감정이 무너져 버린 순간 잘못된 선택을 했다든가, 어떤 사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궁여지책으로 회피를 선택했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든가, 또는 한 번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그릇된 길로 발을 들였다든가 하는 식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사건의 전개나 양상은 다 다르겠지만,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면 대체로 이렇다. 범죄에 이르게 하는 기제라는 게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곁에서 지켜본바, 이들이 다시 일어서는 방식은 저마다 모두 달랐다. 그 놀라운 변칙성은 어떻게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고 다시 뿌리를 내리는 대자연의 신비와도 닮았다.
나는 구독자님들이 보내오는 편지를 종종 오래 들여다본다. 편지에는 사건 기록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 한가득 들어있다. 저지른 죄에 대한 후회, 쌓인 업보에 대한 불안감, 가족에 대한 걱정, 다시 사회로 돌아갔을 때 직면할 냉혹한 현실에 대한 두려움…. 종이에 적다 보면 사람의 진심이 드러나는 법인가 보다.
변호사 경력이 쌓여갈수록 나는 사회에서 말하는 ‘범죄자’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생략하고 있는지 깨닫는 중이다. 사람들은 흔히 범죄를 ‘결과’로만 바라본다. 누가 몇 억 대의 사기를 쳤다더라, 누가 누구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더라…. 그리고 ‘잘못을 했으니 처벌을 받는다’는 단순한 구조로 이를 요약한다. 하지만 실제 사건을 깊이 들여다보면, 대부분은 범죄와 현실 사이에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된 복잡한 사정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생활고와 채무로 인해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였고, 누군가는 가족 문제와 정신적 압박 속에서 판단을 놓쳤다. 또 누군가는 순간 가슴에서 치미는 억울함과 분노를 감당하지 못해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할 선택을 했다. 그 사정들을 하나씩 듣다 보면 죄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그렇다 한들 죄는 죄로 다뤄져야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참작할 사정이 있었다는 것은 공정한 판결을 위해서도 중요하게 다룰 일이다.
판결 이후 편지를 보내오는 구독자님들에게서도 보이는, 작지만 공통적인 변화를 발견했다. 그들의 편지에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삶의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굳은 마음가짐이 읽혔다. 어떤 이는 책을 읽기 시작했고, 어떤 이는 매일 운동을 하고, 어떤 이는 글을 쓰며 자신을 추스르고 있었다. 처벌은 확정되었지만, 그 안에서 삶을 다시 정비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나는 구독자님들이 보내주신 편지를 읽을 때마다 한 가지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사람은 생각보다 잘 무너지고, 또 생각보다 잘 일어선다.
형사사건에 연루된 이들은 대부분 처음엔 죄책감과 불안에 압도되어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삶을 회복할 힘을 조금씩 되찾는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거창한 조언이나 거부감 드는 위로가 아니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줄 창구,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을 잡아줄 현실적인 안내가 필요할 뿐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자주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변호사님, 제 인생이 끝난 것 같아요” 하지만 실제로 삶이 끝난 사람을 본 적은 없다. 잘못된 선택이 삶의 일부를 송두리째 바꾸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미래를 예단해 버리는 우를 범한다. 그러나 삶은 끝날 때까지 요약하거나 규정할 수 없는 일대기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있다면 말하고 싶다. 당신의 사건이 당신이라는 사람을 전부 다 설명하지는 않는다고 말이다. 지금은 어두워 보일지라도 삶은 아직 이어지고 있으며, 그다음 장을 어떻게 써 내려가느냐는 여전히 당신에게 달려있다. 나 역시 누군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현실적인 길을 제시하는 것이 변호사로서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