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0년 동안 형사재판정 한복판에 서 왔다. 무수히 많은 재판을 거치며, 때로는 판결이 상당히 기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피부로 느껴왔다. 형사재판정에서 판사는 혐의만을 본다. 그리고 대법원이 정한 범죄별 양형기준표에 따라 가중 또는 감경 사유가 있는지를 확인한 후 거기에 맞춰 형을 정한다. 그러나 판사도 인간이다. 피고인의 기구한 인생의 흐름, 고단한 삶의 궤적, 그리고 결국 그를 법정에 세운 배경이 변호사인 나까지 울릴 만큼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면, 나는 확신한다. 판사 또한 그것을 외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왜냐하면 재판은 인간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때 적용할 수 있는 조항이 형법 제53조, ‘정상참작감경’에 관한 규정이다. 형법 제53조는 단순히 형량을 깎아주는 법적 장치가 아니다. 이 조항은 재판이 단죄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며, 법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유심칩 판매·관리를 통해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혐의를 받아,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에서 나를 찾아온 의뢰인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포항 사람으로,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인 아들을 위해 먼 길을 달려 내 사무실까
Q. 안녕하세요. <더 시사법률> 신문의 창간호부터 꾸준히 구독하고 있는 독자입니다. <더 시사법률>을 통해 많은 법률 지식과 세상의 소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늘 수고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저의 사례를 상담을 받고 싶어 글을 보냅니다. 저는 2022년 8월경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준강간’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당시 사건은 제가 캠핑장을 운영하던 중 여성 손님 한 분과 술자리를 함께한 뒤 기억을 잃은 상황에서 벌어졌습니다. 피해자는 30대 초반의 미혼여성으로, 제가 운영하는 글램핑 캠핑장에 손님으로 여성 4분이 놀러 왔고, 그중 1명(피해자)이 저에게 계속해서 술자리 참석을 요구하셔서 끝까지 마다하지 못하고 2잔의 소주를 마셨습니다. 이후 기억을 잃고 다시 눈을 떠보니 피해자의 텐트 안이었고, 기억이 나지 않아 당황하고 있는데 피해자가 경찰과 해바라기 센터에 신고하면서 사건이 되었습니다. 1심에서 구형 3년이 나왔고 판결은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1심에서 합의가 안 되어 공탁금 5천만 원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검사부대항소가 떠서 2심에 구속되었습니다. 2심에서 추가로 공탁을 2천만 원을 하였는데, 구
나는 30년간 형사재판정에 서 왔다. 수천 건이 넘는 형사 사건을 수행하며, 억울한 사람도 봤고, 마땅히 죗값을 치러야 하는 사람도 보았다. 법정에서 때로는 유죄 선고가 너무 가볍게, 또 때로는 무죄 선고가 너무 쉽게 나오는 모습을 보며, ‘이 법정에 과연 정의가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가 있다. 그 질문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1995년,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오제이 심슨 사건’이다. 미국 풋볼의 영웅이자 배우였던 오제이 심슨은 자신의 전처 니콜 브라운과 그녀의 친구 론 골드먼을 칼로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모든 정황이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피해자의 피가 묻은 그의 차량, 자택에 남겨진 피 묻은 장갑, 수차례의 폭력 전력, 심지어는 도망치듯 경찰을 피해 도주한 장면까지 공개되며 미국 국민 대부분은 ‘그가 유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제이 심슨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죄를 이끌어 낸 결정적인 증거는 ‘글러브’였다. 검찰이 제시한 피 묻은 장갑을 법정에서 직접 착용해 본 심슨은 “If it doesn’t fit, you must acquit(장갑이 맞지 않으면,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변호
Q. 안녕하세요. 00구치소에 수감 중인 수형자입니다. 재판과 관련하여 궁금한 게 몇 가지 있어 편지 드립니다. 저는 얼마 전 1심이 끝났고 어느 정도 피해 회복을 했음에도 구형 그대로 실형이 선고되었습니다. 판결문 내용 중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어 재판열람을 통해 사건 기록을 확인해보니, 경찰 수사관이 피해 변제할 테니 고소를 취하해 달라고 말한 것조차 조건을 달아서 취하서를 받았다는 식으로 안 좋게 써놓았는데 항소심에서 이런 부분을 반박하여 변론을 하면 감형에 도움이 될는지요? 그리고 변호인이 저와 상의도 없이 의견서에 범행수익을 피해회복을 위해 돌려주었다고 적어놨는데, 마치 돌려막기를 한 것처럼 써놓았습니다. 판결문에도 그렇게 기재되어 있습니다. 변호인 혼자의 판단으로 쓴 의견서 때문에 불이익을 받았다는 걸 항소심에서 어떻게 피력해야 하나요? 또 피해자가 쓴 엄벌탄원서 중에 제가 마치 몇 년 살고 나오면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을 거짓으로 써놓았는데 항소심에서 거짓 내용에 대해 반박을 한다면 도움이 될까요? A. 안녕하세요.귀하께서 지적하신 경찰 수사관의 진술 부분, 변호인의 의견서 내용, 그리고 피해자의 탄원서 중 허위 사
나는 지난 30년간 형사재판정에 서 왔다. 경찰서 유치장부터 구치소, 교도소, 그리고 수많은 법정에서 각기 다른 수천 명의 피고인들을 만나왔다. 억울한 이들도 있었고, 자신의 과오를 되돌아보며 진심으로 반성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다수는 ‘구속’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절망하거나 이미 끝난 싸움이라며 체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하고 싶다. “본안 판결 전 구속은 끝이 아니라, 오히려 판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수사는 불구속 상태에서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그러나 실무에서는 그렇지 않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슬프게도 실무에서의 구속은 피의자가 결국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아래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도주나 증거인멸 가능성은 법적 명분일 뿐, 현실에서는 구속 자체가 향후 실형 가능성의 지표처럼 활용되는 것이다. 그러니 구속되었다는 건 이미 위기다. 법원이 당신의 혐의와 처벌 가능성에 대해 상당히 무겁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되묻고 싶다. 과연 끝난 것일까? 아니다. 이 위기를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