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에서 좋은 결과를 받기 위해서는 판사를 잘 만나야 한다. 판사들이라는 집단은 그 어느 집단보다도 개별 구성원들이 균일하지 않은 집단이다. 판사들은 상명하복의 구조가 아니다. 사적으로 별도로 친한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닌 이상 선배 판사가 후배 판사에게, 부장판사가 배석판사에게 말을 놓는 일도 없다. 이 점은 검사들과 다른 부분이다. 조직 분위기가 이렇기 때문에 3천명의 판사들이 각자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판사는 한주에 평균 한 건 이상은 무죄 판결을 쓰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판사는 1년을 일해도 무죄 판결을 한두 건 쓸까 말까 한다. 전자의 판사들은 판사가 무죄로 견제를 해주어야 억울한 사람도 안 생기고 검찰과 경찰이 더 제대로 수사할 것이라고 믿는다. 반면 무죄 판결을 좀처럼 하지 않는 후자의 판사는 피고인을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변호사도 돈을 받으면 그럴싸한 말로 진실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판사 입장에서 무죄 판결을 하게 되면 검사가 항소하면서 법정 안팎으로 반발을 할까봐 신경 쓰이고 부담스럽게 느끼는 판사들도 있다. 그래서 후자의 판사들 중에는 피고인이 무죄 가능성이 엿
(2화에 이어) 1심 판결이 나왔다. 다행히 피고인이 삽입했다는 부분은 무죄가 되었다. 경찰이 삽입을 했느냐고 조서에만 5차례 물었는데 그때마다 피해자는 없었다고 했었다. 그러다 사건 발생 6개월 뒤, 피해자 부친이 합의를 제안했다가 피고인이 거부한 이후에는 삽입이 ‘조금’ 있었다고 진술이 바뀌었고, 1년 6개월 후 법정에서는 ‘강압적으로 삽입’했다고 진술이 변했다는 우리의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가 13세 미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판단해서 의제강간죄 미수죄를 인정하고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미성년자의제강간죄의 법정형이 3년 이상의 징역인데, 미수죄가 인정되었으므로 절반이 감경된 하한을 선고한 것이었다. 판결 이유를 보고 나와 영호 가족은 아연했다. 1심 판결은 피고인의 입장(피해자는 나이를 묻는 영호에게 “Y 중 3학년”이라고 말했고 그러자 영호는 “나는 K 고 3학년이야”라고 거짓으로 둘러댔다)을 믿지 않는 근거에 대해서, 서로 다른 삶의 여정을 거쳐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서 둘 다 ‘지명 + 학년’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인사했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보기에는 부자연스럽고 연극 대본처럼 조작된 것 같다고
나는 마지막 기일에 들어가 증인 한 명을 추가로 신청했다. 피해자는 인터넷에 성관계 파트너를 구한다는 글을 올린 후 1달 동안 5명의 남자를 인터넷으로 만나 성관계를 했는데, 영호가 피해자를 만나기 1시간 전에도 또 다른 30대 초반의 남자를 만나 자동차 안에서 성관계를 했다. 나는 이 남자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이 남자는 이미 다른 법원에서 피해자에 대한 미성년자의제강간죄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형을 받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내가 이 남자를 증인으로 신청한 이유는 이 남자의 경우 피해자가 당시 12세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16세 이상으로 오인한 것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이었다. 2020년부터 13세 이상 16세 미만인 피해자와의 성관계를 의제강간죄로 인정하는 조항이 도입되었지만, 이 조항은 사건 당시 19세 이상 성인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17세였던 영호에게 적용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영호 입장에서는 피해자가 13세 미만이라는 점을 몰랐다는 것이 인정되기만 하면, 15세로 인식했다고 하더라도 형법 제305조 제2항의 처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무죄가 되는 것이었다. 당초 이 사건의 마지막 기일로 정해진 날에 내가 처음 들어가서 증인을 신청하자,
일전에 고객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고객은 내가 변호한 피고인의 어머니였는데, 그 피고인은 미성년자의제강간죄로 기소된 당시 고등학교 2학년생이던 영호(가명)이었다. 나는 그 사건을 함께 한 동료 이민진 변호사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저녁 식사를 했다. 그 시간이 좋았기에 다음에 또 한번 만나기로 했다. 재판이 끝난 뒤에 변호인과 고객이 사적으로 만나 좋은 시간을 가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영호의 어머니와 계속 좋은 사이로 지낼 수 있는 것은 영호의 재판 결과가 기대했던 것만큼 좋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영호는 일부 무죄를 받았다. 나는 식사 자리에서 다시 한번 기대했던 결과를 내지 못해 송구하다고 말했고, 어머니는 누구보다 열심히 진심으로 변론해 주신 것을 잘 안다며 격려해 주었다. 대신 우리는 잘못된 판결이 남긴 고통과 상처를 서로 위로했다. 어머니는 믿어주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경찰도, 검사도, 판사도 자신의 무고함을 믿어주지 않자 온 세상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듯한 고립감과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피고인들을 여럿 보았다. 사실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 그 억울함을 제대로 알아줄 사람은 변호인뿐이다. 친구나 가족도 있겠지만 변호인만큼 사건의 내용과 그
판사 생활을 하다가 변호사가 되니 달라진 것이 많지만, 가장 다른 것 중 하나가 판결 선고일에 느끼는 감정이다. 판사 때는 판결 선고일이 시험 답안지를 제출해야 하는 마감 시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변호사가 되니 선고일이 시험 당락 발표일 같다. 붙느냐 떨어지느냐에 따라 희비가 크게 좌우되는 중요한 입시나 취직 시험 결과의 발표일 말이다. 선고일이 가까워질수록 신경이 쓰인다. 선고 결과가 유죄일지, 무죄일지, 실형일지, 집행유예일지 생각하게 되고 마음이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변호사도 이러니 당사자는 오죽할까. 그래서 의뢰인들은 선고일이 가까워지면 특별히 알릴 소식이 없어도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괜히 내게 전화하곤 한다. 의뢰인들 중에는 변호사에게 별다른 일이 없이 전화하기가 미안해 참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선고 전날에는 내가 먼저 의뢰인에게 연락을 드리는데, 모두 좋아하신다. 그런 날의 통화에서는 이미 서로가 수없이 이야기했던 말들이 오가지만 그러면서 서로 불안한 마음이 진정된다. 판사일 때는 판결을 선고한 직후부터 후련했다. 그 순간부터 그 사건에 대한 고민의 의무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결과에 따라 판사의 기분이 달라질 것은 없다. 유죄 판결
4. 1. 만우절 아침에 일어나서 휴대폰을 보니 장제원 전 국회의원의 사망 소식이 곳곳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전날 밤 11시 반경 서울 강동구 오피스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장 의원은 10년 전 부친이 이사장이던 부산 모 대학 부총장 시절 여비서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 장제원 의원은 내가 일면식도 없고 특별히 호감을 가졌던 정치인도 아니다. 그런데도 만우절 오전 내내 유쾌하지 않은 거짓말에 속기라도 한 것처럼 우울해졌다. 피해자도 걱정된다. 성폭력으로 인해 10년간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이제 어렵게 용기를 내서 법적, 사회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제 장 의원의 자살로 더 큰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을지도 모른다. 부디 불필요한 죄책감과 못난 사람들의 입길에 마음을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법복을 벗고 작년부터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보니 이제는 변호사의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변호사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를 생각하는 것도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내가 장 의원의 변호인이었다면 어떤 조력을 했어야 했을까. 변호사인 내 입장에서는, 일을 하면서 의뢰인이 진짜 억울하다는 것을 확신할수록 힘이 더 난다. 진실 자체가 가장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갈 여유가 없어서 직원들과 배달의 민족(‘배민’)으로 유명 유튜버가 추천했다는 비싼 김밥(‘김밥계의 에르메스’라는 별명도 있다)을 3인분 시켰는데 달랑 2인분만 왔다. 직원이 바로 배민에게 얘기하고 1인분 금액 9천원의 환불을 요구했으나, 배민은 김밥집 사장이 아무리 연락을 해도 답이 없다고 한다. 배민 싸이트에 들어가 보니 이 김밥집에는 우리와 같은 불만을 토로하는 수많은 댓글이 달려있었다. 주문한 양과 배달한 양이 불일치한다, 그 뒤로는 연락을 받지 않는다,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 찾아가서 항의하기 전에 빨리 환불을 해달라 등등. 오늘 직원들과 함께 어느 식당에 점심 먹으러 갔다가 직접 한번 그 김밥집에 가보자고 했다. 김밥집은 유리벽 내부가 조금도 보이지 않도록 초록색 썬팅으로 꽁꽁 싸매고 있었다. 왼쪽 구석에 고속버스 터미널 매표소 같이 작은 문이 나 있고 그 앞 테이블 위에 주문을 받아서 만든 김밥을 쌓아두고 있었다. 그 창구도 내부를 잘 볼 수 없도록 커튼이 쳐져 있었는데 그 안을 힐끔 살펴보니 또 하나의 벽 위로 ‘출입엄금 – 이곳은 나의 사유지이므로 방해할 수 없음’이라는 취지의 글이 빨간색 손글씨로 적혀 있어서, 역시 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