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1. 만우절 아침에 일어나서 휴대폰을 보니 장제원 전 국회의원의 사망 소식이 곳곳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전날 밤 11시 반경 서울 강동구 오피스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장 의원은 10년 전 부친이 이사장이던 부산 모 대학 부총장 시절 여비서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 장제원 의원은 내가 일면식도 없고 특별히 호감을 가졌던 정치인도 아니다.
그런데도 만우절 오전 내내 유쾌하지 않은 거짓말에 속기라도 한 것처럼 우울해졌다. 피해자도 걱정된다. 성폭력으로 인해 10년간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이제 어렵게 용기를 내서 법적, 사회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제 장 의원의 자살로 더 큰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을 지도 모른다. 부디 불필요한 죄책감과 못난 사람들의 입길에 마음을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법복을 벗고 작년부터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보니 이제는 변호사의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변호사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를 생각하는 것도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내가 장 의원의 변호인이었다면 어떤 조력을 했어야 했을까. 변호사인 내 입장에서는 의뢰인이 억울하다고 말할수록 힘이 난다. 일을 하면서 의뢰인이 진짜 억울하다는 것을 확신할수록 힘이 더 난다.
진실 자체가 가장 큰 힘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무죄인데도 유죄의 혐의를 받고 있는 의뢰인의 경우에는 그만큼 내가 변론해줄 말도 많다. 그래서 나는 무죄 변론을 해야하는 사건을 가장 좋아한다.
그러나 의뢰인이 사실은 범죄를 저질렀고 증거도 상당히 있지만 솔직하게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경우도 있다. 추측이지만 장 의원도 그런 경우가 아니었을까. 현 정권의 실세이자 국회의원으로 전국적으로 알려진 인물이고, 개신교인으로서 교회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신자들도 많고, 무엇보다도 배우자와 자식이 있다.
피해자에게는 못할 짓이지만 그런 상황에서 잘못을 고백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런 경우에 변호사로서는 자백을 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증거가 상당히 있는 상황에서 끝까지 부인을 하라고 조언하기도 어렵다. 자백을 하면 감옥에 가는 것 외에도 사회적인 명예와 사업적 기반과 가족 간의 관계까지 망가질 수 있다.
반면, 끝내 부인을 하면 나중에 더 큰 처벌과 함께 앞서 말한 불이익도 당할 수 있는 반면에 끝까지 억울하다고, 수사와 재판이 잘못된 것이라고 변명의 여지를 남길 수는 있다.
변호사는 이들 각 경우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 것인지를 설명해줄 수 있을 뿐, 그 선택은 오롯이 의뢰인이 할 몫이다. 그럼에도 이런 경우에 의뢰인이, “변호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나도 한숨부터 나온다.
당장 매우 나쁜 상황이 초래되는 길과 나중에 훨씬 더 나쁜 상황이 초래되면서도 변명의 여지는 남기는 길 사이에서 어느 쪽 길이 나은가를 저울질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그 어느 쪽 길도 실제로 가지 않는 내가 섣불리 그 무게를 가늠해서 그중 어느 쪽 길을 실제로 가야 하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어딘가 면구한 구석이 있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살아갈수록 욕된 길로 발을 헛딛는 일들이 생기고 그러다보면 결국 대개 그럭저럭 욕되게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니, 남의 일 같지 않아 한숨이 깊어지기도 한다.
장 의원은 그 어느 쪽에도 길이 없으니 인생의 길이 끊겼다 여겨 이제 여기까지만 가자고 판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언젠가 길을 잘못 들어 더 이상 길이 안 보여 끊긴 것 같을 때 어찌 해야할지를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