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예문정앤파트너스] 판사 때와 변호사 때의 판결 선고일의 차이 (정재민의 변호사 다이어리)

시험 결과 발표일 같은 선고일
어떤 결과든 의뢰인과 마주해

 

판사 생활을 하다가 변호사가 되니 달라진 것이 많지만, 가장 다른 것 중 하나가 판결 선고일에 느끼는 감정이다. 판사 때는 판결 선고일이 시험 답안지를 제출해야 하는 마감 시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변호사가 되니 선고일이 시험 당락 발표일 같다. 붙느냐 떨어지느냐에 따라 희비가 크게 좌우되는 중요한 입시나 취직 시험 결과의 발표일 말이다. 선고일이 가까워질수록 신경이 쓰인다. 선고 결과가 유죄일지, 무죄일지, 실형일지, 집행유예일지 생각하게 되고 마음이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변호사도 이러니 당사자는 오죽할까.


그래서 의뢰인들은 선고일이 가까워지면 특별히 알릴 소식이 없어도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괜히 내게 전화하곤 한다. 의뢰인들 중에는 변호사에게 별다른 일이 없이 전화하기가 미안해 참고 있는 경우도 있다. 우리 사무실 모토가 “고객이 찾기 전에 먼저 보고드린다”인 만큼, 선고 전날에는 내가 먼저 의뢰인에게 좋아하는데 모두 좋아하신다. 그런 날의 통화에서는 이미 서로가 수없이 이야기했던 말들이 오가지만 그러면서 서로 불안한 마음이 진정된다.


판사일 때는 판결을 선고한 직후부터 후련했다. 그 순간부터 그 사건에 대한 고민의 의무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결과에 따라 판사의 기분이 달라질 것은 없다. 유죄 판결을 내린다고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고 무죄 판결을 내린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물론 억울하게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고 피해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피고인에게 중형을 선고할 때 약간의 보람을 느끼긴 하지만 감정이 고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변호사가 되니 선고 직후부터 큰 파장이 일어난다. 승소 하면 확실히 기분이 좋다. 도파민이 솟는다. 의뢰인은 더 기뻐한다. 의뢰인이 성공보수도 주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도 해주니 실리적으로도 이롭다. 반대로 패소 하면 마치 낙방한 시험 결과를 받아 든 것 같이 낙심하게 된다. 판사를 원망하는 마음도 들고 나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한다. 변호사로서 면목이 없어지고 미안해진다.


나쁜 결과가 나왔을 때는 의뢰인을 만나거나 연락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다. 변호사가 선고일에 법정에 가지 않는 것도 가서 할 일이 없기도 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회피하지 않는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내가 직접 고객에게 전화한다. 법원에서 선고를 듣고 바로 사무실로 들르시라 안내하기도 한다. 결과가 나쁘더라도, 의뢰인이 나에게 화를 내더라도 그것은 내가 직면하고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나는 평소 의뢰인과 수시로 직접 통화하기 때문에 선고 결과가 나쁘다고 갑자기 연락을 끊을 수도 없고, 선고 전에 다양한 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해 드리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불의의 결과가 나오는 일도 없다. 그래도 선고 결과가 나쁘면 나는 “송구합니다. 제가 부족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우리 의뢰인들은 감사하게도 “아닙니다, 변호사님이 열심히 하신 거 잘 압니다.”라고 말씀해 주신다. 그리고 대부분 항소심도 이어서 맡기신다.


이번 주는 3건을 성공했다. 학교 교사인 의뢰인이 억울한 형사 사건으로 파면 결정을 받았는데 교사의 경우 소청심사를 먼저 끝내야 행정법원 소송을 할 수 있음에도 특별한 논리로 소청심사를 제기함과 동시에 행정법원 집행정지를 이끌어 냈다. 형사사건에서는 어려운 병보석을 허가받았다. 기존에는 의뢰인과 무수히 편지를 교환하다가 이제는 휴대폰으로 수시로 통화하고 있다. 어이없는 사기를 당한 피해자 대리를 한 사건은 당초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했으나, 내가 수사관의 팀장을 찾아가 설득한 끝에 이번 주에 혐의 있음으로 송치 결정을 받았다. 당연히 많이 기쁘다. 의뢰인들은 더 기뻐했다. 이럴 때는 판사가 아닌 변호사라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