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예문정앤파트너스] 일을 미리미리 챙겨야 하는 이유 (정재민의 변호사 다이어리)

시간 쫓기며 쓴 서면 좋지 않아
고객이 찾기 전 먼저 보고 원칙

굳이 변호사 일이 아니라도 모든 일은 미리미리 일을 해 놓으면 좋다는 것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변호사 일은 더더욱 그렇다. 선고 전날 변론요지서를 제출하거나 항소이유서 제출 기한 마감일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는 것은 사실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런 경우는 대개 변호사가 마감 기일에 촉박해서, 그러니까 마감 기일 전날부터 이런 서면을 작성하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시간에 쫓겨서 작성하는 서면의 품질이 좋을 리 없다. 좋은 서면을 쓰려면 기록을 여러 번 꼼꼼히 읽고, 관련된 다른 사례나 판결례를 광범위하게 조사해서 반영하고, 완성된 초안을 거듭 다시 보면서 고치고, 다른 사람의 피드백까지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마감에 쫓기면 이를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판사로 일할 때 변호사가 변론 기일 전날 서면을 제출하거나, 선고 직전에 변론요지서를 제출하거나, 항소이유서의 마감날 항소이유서를 제출하거나, 서면 제출을 계속 미루다가 도저히 더 미룰 수가 없을 때 제출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나는 판결 선고 전 일주일 전 또는 사나흘 전에 판결문을 다 써 놓았는데, 선고 전날에 변론요지서를 받으면 그것을 찬찬히 읽고 판결문에 반영하기가 어렵다. 뒤늦게 제출된 서면은 열심히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고 그 내용을 보더라도 예상대로 부실해서 판결에 반영할 것이 별로 없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내 사무실에서는 서면 제출 마감일 일주일 전까지 초안을 완성해 놓고 회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부득이 급하게 진행되어야만 할 때에도 최소한 사흘 전에는 초안 작성을 완료한다.

 

사흘 전에 완료하려면 보통 일주일 전에는 착수해야 한다. 사흘 전에는 초안이 나와야 고객에게 보내서 피드백을 받을 수 있고, 동료 변호사들이 돌려보면서 피드백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을 미리미리 한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다. 우선 변호사들이 사건을 주시하면서 계속해서 챙기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일을 ‘챙기는 것이’ 변호사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미리미리 일을 해놓는 변호사는 항상 여유가 있지만, 미루는 변호사는 마감에 쫓기느라 항상 바쁘다.

 

겉으로 보면 후자의 변호사가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질은 전자의 변호사가 더 많이 일하고 또 잘한다. 마감 기일이 도래하기 한참 전에 초안을 다 작성해 놓고 나면 그 이후에 더 좋은 내용이 떠오르기 마련이고 그럴 때마다 덧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성격상 일을 미리미리 해 놓아야 마음이 편한 스타일이다. 이 때문에 늘 마감에 쫓겨서 일하는 변호사와는 아예 협업이나 동업을 하려 하지 않는다. 결국 상대보다 내가 늘 더 많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기존에 변호사를 선임한 사람들이 가장 자주 하는 불만 중의 하나는 상담을 했던 대표변호사나 파트너와는 일단 선임한 이후에는 변호사와 직접 연락이 안된다는 것이다.

 

나의 법률사무원도 과거 있던 변호사 사무실에서 고객한테서 변호사를 바꾸라는 전화가 오면 변호사가 (있는데도) 없다, 말씀 주시면 전하겠다고 둘러대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고 한다.

 

고객을 상대하는 것을 힘들어 해서이기도 하지만, 실제는 사무장이 일하거나 어쏘변호사가 일하고 있어서, 변호사나 대표변호사가 전화를 받으면 자신이 사건을 모른다는 것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의뢰인 입장에서는 변호사가 자기 사건을 제대로 챙기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진다.


이에 우리는 “고객이 찾기 전에 먼저 보고 드린다”를 또 다른 계명으로 삼았다. ‘보고’는 윗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해본 분들은 알겠지만, 윗사람이 찾기 전에 알아서 진행 상황이나 중요한 정보, 좋은 기획을 보고해야 유능한 직원이다.

 

고객이 변호사에게 물어볼까 말까 눈치를 보기 전에, 변호사가 자기 사건을 제대로 챙기는지 몰라 불안해하기도 전에, 먼저 선제적으로, 그것도 대표변호사가 직접 보고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