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변호사님, 경찰 출신이시죠?” 상대는 수사를 받고 있다며 담당 수사관이 경찰대 출신이라 혹시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요컨대, 인맥을 써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같은 경찰대 출신이라도 혐의가 확실한 사건은 봐줄 수 없습니다. 그런 기대라면 선임할 필요 없어요.”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보통 의뢰인들은 경찰 출신, 전관출신 변호사를 선임하면 사건이 잘 풀릴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은 경찰대 3년 후배였다. 매년 정기모임에서 만나는 사이였고 아끼는 후배이기도 했다. 하지만 선후배 관계가 있다고 해서 사건이 잘 마무리되거나 혐의가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내 경험상, 경찰, 전관출신 변호사는 그해당 직무를 수행해 봤기에 수사기관이 어떤 증거를 가지고 어떻게 싸우려는지, 그 흐름을 읽을 줄 알고 의뢰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그 흐름을 대처한다는 것이다. 다음 날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직접 만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약속을 잡고 사무실에서 만난 사람은 두 명, A와 B였다. 사건 내용은 차깡 범죄였다. 신용이 좋은 사람의 이름으로 무담보 대출을 받아 신차를 구입한 뒤, 바로 중고차
내가 처음 천안 소년교도소에 들어섰을 때, 이곳은 약 1,300명의 소년 수용자와 SOFA 수용자, 미결 성인수, 공안 사범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법적으로 소년수는 14~19세지만, 최대 23세까지 수용할 수 있어 겉모습만 보면 성인 같은 청년들이 많았다. 온몸에 문신을 새긴 위압적인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소년교도소는 단순히 형벌을 받는 곳이 아니었다. 검정고시와 대입 준비, 자동차 정비 같은 직업훈련, 농악과 복싱을 배우는 충의대 활동, 그리고 위탁공장에서의 노동 등 변화와 사회 복귀를 준비하는 공간이었다. 대부분의 소년수형자는 결손가정 출신으로, 부모의 부재와 빈곤한 환경 속에서 범죄에 쉽게 노출된 아이들이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해 과도한 형량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가슴 아픈 사연이 많았다. 특히 접견 업무를 하며 마주한 이야기들은 나를 더 깊이 생각하게 했다. 접견 연출 근무는 소년수들을 사동이나 공장에서 접견실까지 데려오고, 접견이 끝난 뒤 다시 데려다주는 단순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10여 분 동안 나누는 대화 속에는 무거운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어느 날, 1공장에서 A라는 소년을 데리러 갔다. 하지만
1982년 1월의 어느 날 나는 명동성당 성물방 건물에서 사목 국장 신부님과 마주하고 있었다. 손에는 내가 며칠 밤낮을 고민하며 준비한 신학교 입학원서가 들려 있었다. 내가 품어온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신부님, 입시 요강 어디에도 그런 기준은 없습니다. 신청받으신 후 버리셔도 좋으니, 신청은 받아주십시오.” 신부님은 원서를 가져가라고 하시며 끝내 내 원서를 받지 않으셨다.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느님께서 날 시험하고 계신 걸까?'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신부님, 저도 압니다. 제 부족함을요. 하지만 우리 본당 신학생이 그러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너를 올해 신학교에 부르실지 모른다’라고요." 하지만 신부님은 끝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가져가세요. 원서를 받아줄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참고 있었던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한 채,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안은 고요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예수님상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제 잘못입니까, 주님? 제 부족함이 너무 큰 탓입니까?” 신부님을 이해하려 애썼지만, 그의 차가운 태도가 자꾸만 마음을 후벼 팠다. 성당에서 평생
오늘 하루도 여느 때처럼 바쁘게 시작됐다. 오전 9시, 사무실에서 시작된 회의는 예상보다 길어졌다. 의뢰받은 ○○기업 사건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논의가 끊이지 않았다. 자료를 정리하고 의견을 조율하다 보니 어느새 시계는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후 1시에 있을 재판 준비도 해야 해서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갔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를 검토하던 중, 핸드폰 화면에 찍힌 부재중 통화 알림이 눈에 들어왔다. 무려 7통이나 되는 모르는 번호였다. '누구지?'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떨림이 가득한 중년 여성의 것이었다. “변호사님... 저 ○○○ 엄마예요.” 이름을 듣는 순간 누구인지 바로 떠올랐다. 나는 매달 많은 의뢰인을 만나고, 그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이름은 잊을 수 없었다. 1년 전 재판에서 내가 변호를 맡았던 피고인이었다. ○○○, 교도소를 수십 번 다녀온 전과 30범. 내가 만난 의뢰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었다. “예,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세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은 출소한 지 3개월 만에 또 다른 범죄를 저질러 새벽에 긴급체포되었다. 나는 오후 1시 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