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에서 좋은 결과를 받기 위해서는 판사를 잘 만나야 한다. 판사들이라는 집단은 그 어느 집단보다도 개별 구성원들이 균일하지 않은 집단이다. 판사들은 상명하복의 구조가 아니다. 사적으로 별도로 친한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닌 이상 선배 판사가 후배 판사에게, 부장판사가 배석판사에게 말을 놓는 일도 없다. 이 점은 검사들과 다른 부분이다.
조직 분위기가 이렇기 때문에 3천명의 판사들이 각자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판사는 한주에 평균 한 건 이상은 무죄 판결을 쓰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판사는 1년을 일해도 무죄 판결을 한두 건 쓸까 말까 한다. 전자의 판사들은 판사가 무죄로 견제를 해주어야 억울한 사람도 안 생기고 검찰과 경찰이 더 제대로 수사할 것이라고 믿는다.
반면 무죄 판결을 좀처럼 하지 않는 후자의 판사는 피고인을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변호사도 돈을 받으면 그럴싸한 말로 진실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판사 입장에서 무죄 판결을 하게 되면 검사가 항소하면서 법정 안팎으로 반발을 할까봐 신경 쓰이고 부담스럽게 느끼는 판사들도 있다.
그래서 후자의 판사들 중에는 피고인이 무죄 가능성이 엿보여도 정밀하게 사안을 분석해서 무죄 판결을 쓰지 않고 그냥 사건의 사실관계 위에 모호함의 담요를 덮어두고 집행유예나 대폭 감형을 해주는 유죄 판결로 일을 끝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무죄 판결을 쓰면 검사가 반드시 항소해 논박하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깨질 가능성도 높아지고 그런 일이 누적되면 자신의 평판도 손해를 입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자의 판사들 앞에서 무죄 주장을 하면 괘씸죄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후자의 판사를 시스템적으로 걸러 내기가 어렵다. 재판의 독립이 너무나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괘씸죄를 적용하는 일까지 보호받아서는 안 된다. 게다가 요즘 항소심에서는 새로운 증인 신청을 받아주지 않고 거의 1심을 그대로 인용해주는 분위기다. 그러니 1심 판사가 오판을 해도 걸러지기 어렵다. 바뀌어야 할 부분이다.
한편, 후자의 판사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많은 변호사들이 웬만하면 자백하고 선처를 구하라고 조언하게 된다. 제대로 다투었다가 운 좋게 전자의 판사를 만나면 무죄 판결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후자를 만나면 자백했을 때보다 훨씬 나쁜 결과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입장에도 피고인이 자백을 하면 할 일이 많지 않은 반면, 무죄룰 주장하면 할 일이 매우 많아진다.
기록을 보는 것부터 서면 작성, 증인신문 등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많이 투하고 결국 더 높은 형량을 받게 되면 피고인이 낙심 내지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고 변호사를 원망할 가능성이 크다. 변호사로서는 판사를 봐가면서 변론을 해야 한다. 우선 판사가 전자의 판사인지, 후자의 판사인지 파악해야 한다. 무엇보다 법정에서 변론을 하면서 판사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데, 파악을 위해서는 그만큼 변호사가 경륜이 있고 눈치도 있어야 한다.
피고인의 억울함을 판사가 짜증나지 않을 정도의 어투와 문체로 쉽게 전달해야 한다. 말과 글이 길어지고 질척이면 역효과가 난다. 판사에 따라 맞춤형으로 적절하고 간결하게 쓰는 것이 좋은 변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