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을 몇 장 썼는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범행 인정 경위와 재범 방 지 노력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진정성 을 판단합니다
.” 최환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내용이 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달 대법 원 중회의실에서 ‘양형기준의 이해’를 주제로 기자들과 만났다.
최근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이나 가 족들이 수십 장의 반성문과 수백 장의 탄원서를 제출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양형위원회는 분량보다 ‘진정성’을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최 상임위원은 “피고인이 범행을 인 정하고 구체적 경위, 피해 회복 또는 재범 방지 노력을 보여줄 때 진지한 반성으로 본다”며 “반성문의 매수나 분량은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양형위원회는 대법원 산하 독립기 구로, 양형자료 조사·분석부터 기준 초안 작성, 공청회, 확정까지 단계별 로 진행한다. 2019~2023년 기준 양형 기준 준수율은 매년 90%를 넘는다.
이 최근 판결문을 분 석한 결과, 진정성 없는 반성문이 감 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 고등법원은 사기 사건(2025. 1. 8. 선고 2024노582 판결) 항소심에서 “피고인은 범행 후 피해자들을 탓하 거나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하소연하 는 내용의 자필 반성문을 제출했다” 며 원심 형량(징역 3년)을 유지했다.
반성문에는 “법은 늘 피해자 편”, “지 인들에게 소문을 내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닌다”는 원망성 내용이 담겼다. 재 판부는 “이 같은 반성문은 진정한 반 성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인천지법 2024고합 896 사건에서도 피고인은 5,000만 원을 공탁하고 수십 장의 반성문을 제출했지만, 피해자와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피해자가 공탁 금을 거부해 공탁 역시 제한적으로만 반영됐다.
재판부는 “범죄의 중대성, 피해자의 지속적 고통, 재범 가능성” 등을 이유로 원심형을 유지하며 항소 를 기각했다. 법원은 “합의 없는 반성 문만으로는 양형을 낮출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반면 진지한 반성과 함께 실질적 피 해 회복 노력이 병행된 경우에는 양형 에 유리하게 반영됐다.
서울남부지법(2024고단 1954) 상 해·공무집행방해 사건에서는 피고인 이 피해자와 합의하고 반성문을 제출 해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피고인이 반복적 범행 전력에도 반 성문을 통해 진지한 반성 태도를 보이 고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점”을 유리 한 정상으로 판단했다.
서울남부지법 아동·청소년 성착취 물 제작 사건(2024고합865)에서는 피 고인이 성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공탁금을 납부하며 노력을 기울였다.
권고형이 징역 5~9년이었으나 반성 문과 재범 방지 노력이 반영돼 징역 2 년 6개월의 낮은 형량이 선고됐다. 실제 재판 현장에서는 형식적 반성 문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적 지 않다.
일부 피고인들은 “오늘 아침 에 일어나 무엇을 했고, 화장실에는 몇 시에 갔다”는 등 쓸 내용이 없어 억 지로 채운 반성문을 제출하는 경우도 있다.
가족들은 특정 단체에 탄원서를 요청하거나 회사 동료 수백 명이 서명 한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한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형사재 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증 거자료”라며 “탄원서가 반드시 고려 되는 것은 아니지만, 피해자와 합의를 시도했거나 공탁금을 납부한 내용이 담긴 경우 재판부가 참고할 수 있다” 고 말했다.
또 “정말 정성스러운 탄원 서라면 재판부도 이를 꼼꼼히 읽어본 다”고 덧붙였다. 실제 사례도 있다. 한 피고인의 아내 가 전지(全紙)에 손톱만 한 글씨로 빼 곡하게 채운 탄원서를 제출하자, 재판 부는 그 진정성에 감동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에 참여한 판사는 “보통 A4 용지 한두 장에 형식적인 내용만 담기는데, 이 피고인의 아내는 남편과 의 인연, 범행 배경, 재활 의지를 전지 에 상세히 적어냈다”며 “당시 전지를 펼쳐놓고 읽으며 감탄했다”고 전했다. “이런 가족이 곁에 있다면 기회를 한 번 더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합의가 전제된 경우였다. 한편 지난 27일 출범한 제10기 양형 위원회(위원장 이동원 전 대법관)는 현재 양형기준 설정·수정 대상 범죄군 선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최 상임위원은 “아직 전문위원단 단 계이며 의견 수렴 중”이라며 “7월 23 일 제139차 회의에서 대상 범죄군이 의결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양형기준 수정은 법률 개정뿐 아니 라 국민적 공감대와 실무 요청도 고려 한다. 최 상임위원은 “법 개정 직후 바 로 수정하지 않고 실무 축적을 지켜본 다”고 재확인했다.
또 “현재 대부분 판결문에 양형기준 이 기재되지만, 단독 판결은 아직 기 재 비율이 낮은 편”이라며 “그러나 판 사들은 양형기준을 모두 확인하고 선 고한다”고 설명했다.
판결문에 기재 되지 않았다고 해서 양형기준이 적용 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번 10기 위원회에서 어떤 범죄군 이 새로 설정·수정될지 법조계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