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형자의 재범 위험을 점수로 예측하는 교정재범예측지표(REPI)는 수형자의 처우 수준, 가석방 여부, 교화 프로그램 배정까지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2012년 3월부터 신입 수형자 심사에 도입됐으며, 같은 해 11월부터 가석방 심사에도 활용됐다.
전국 모든 수형자에게 일괄 적용되는 이 지표는 ‘수형자의 교정 처우를 합리화하고 재범을 예방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범죄 전력, , 정신 건강, 교정 성적 등 각 항목을 점수화해 REPI-1(재범 위험성 거의 없음)부터 REPI-5(매우 높음)까지 5단계로 분류된다.
예컨대 REPI-5 등급 수형자의 2년 내 재복역률은 43.9%에 달하지만, REPI-1 수형자는 1.3%에 불과했다.
법무부 ‘분류처우 업무지침’에 따르면, REPI는 신입 심사용(REPI-신입)과 정기·부정기 재심사용(REPI-재심사)으로 구분된다.
신입 심사는 입소 직후 작성되며, 정기 재심사는 형기 3분의 2 시점에 진행되고, 무기형이나 장기형(형기 20년 초과)의 경우 20년 경과 후 3년 주기로 재평가가 이뤄진다. 집행유예 실효, 재심, 위헌 결정 등으로 형기가 변경될 경우에는 부정기 평가가 실시된다.
다만, 노역 수형자는 평가 대상에서 제외되며, 감형으로 형기가 줄어든 경우에는 REPI를 재산정하지 않는다.
REPI는 재범 위험이 낮게 산정될수록 자율적 처우 및 조기 사회 복귀의 가능성이 열리고, 반대로 높게 산정되면 집중 교정 및 엄격한 관리 대상으로 분류된다.
특히 가석방 심사에서 REPI 등급은 주요 참고자료로 활용되며, 실제로 등급이 낮은 수형자가 우선 심사 대상에 오르는 사례도 많다.
교정 당국이 이 수치를 정책 판단의 근거로 삼기 때문에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수형자의 미래를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기준인 셈이다.
지난 202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교정재범예측지표(REPI)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REPI가 ‘정적 요인’ 위주로 구성돼 있었다는 점이다. 수형자의 과거 범죄 전력, 최초 범죄 연령, 가족관계 등 변화하기 어려운 항목이 주를 이뤄, 수형생활 중 반성이나 교정 프로그램 참여 같은 ‘동적 변화’가 점수에 반영되기 어려웠다. 예컨대 모범수로 성실히 교도작업에 참여한 수형자도 과거 범죄가 중하면 여전히 높은 REPI 점수(3~5)를 받았다.
이로 인해 실무 현장에서는 REPI에 대한 불신도 존재했다. 한 교정공무원은 “사이코패스 유형 수형자들이 모범적으로 행동해 REPI 점수가 낮은데도 처우 등급은 개방처우급(S1급)으로 분류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연쇄살인범 이춘재도 수형생활 당시 S1급 평가를 받았던 사례가 있었다.
또한 REPI와 별도로 존재하는 ‘경비 등급별’ 평가도 문제다. 두 지표가 유사한 항목을 다루고 있음에도 별개로 운영되면서 현장의 행정 부담만 가중된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이중평가 구조 속에서 실효적 관리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권위 권고 따라 평가방법 개편…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며 국가인권위원회는 2023년 5월 법무부에 교정재범예측지표 개선을 권고했다.
특히 학력, 동거 횟수, 입소 전 주거 상태, 정신병원 치료 이력 등 사회인구학적 요소가 재범 위험성을 예측하는 데 사용되는 것은 차별적이라는 지적이었다. 인권위는 이들 문항이 수형자의 개인적 변화 가능성을 배제하고, 불가역적 속성을 근거로 낙인찍는 방식으로 운용돼 왔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2022년부터 REPI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시행해 개선안을 마련했고, 2024년 6월 24일부터 새롭게 개정된 지표를 전면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동거 횟수, 학력, 직업 등 논란이 된 항목을 고정 평가요소에서 사례관리형 문항으로 전환했으며, 일부 항목은 삭제하고 ‘치료 및 교육에 대한 태도’ 같은 동적 요인을 신설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법무부가 배포한 신입 심사용 새 REPI에는 총 17개 항목이 포함돼 있으며, 과거보다 현재 태도 반영 비중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REPI 평가방법은 ‘비공개 원칙’
그러나 여전히 비판은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로, ‘분류처우 업무지침’ 제76조는 수형자의 REPI 평가방법을 비공개로 규정하고 있다.
수형자가 ‘자신의 등급을 알고자 할 때’에만 등급을 고지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수형자가 등급을 알 권리를 사전에 보장받지 못하고, 등급의 근거와 점수 세부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제도적 통로도 없다는 의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등급이 수형자의 실질적 자유와 기회를 제한하는 요소로 작동하는 이상, 결정의 이유를 사전 고지하고 불복 절차를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REPI 점수는 특히 가석방 심사에서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REPI-1~3급 수형자만 가석방 심사 대상에 상정되며, REPI-4급 이상은 제외된다.
하지만 REPI 점수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가석방 심사 과정에서는 사회적 파장, 피해 회복 여부, 국민적 신뢰 등 정성적 요인도 중요한 평가 항목으로 작용한다.



2019년 5월 가석방 심의록에 따르면 REPI-1등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의 신뢰를 크게 훼손한 경제범죄자나 언론적 관심이 큰 사건의 경우에는 심사위원회에서 ‘부적격’ 의견이 다수 나오는 사례가 적지 않다.
반대로 환자, 장애인 등 특별한 보호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REPI-3등급임에도 적격 판정을 받는 경우도 존재한다.
REPI는 재범 예방을 위한 보조지표이지만, 수형자의 권리와 처우를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평가 기준의 불투명성, 가석방 결정에 대한 영향력 등은 교정의 목적이자 핵심인 ‘회복과 재사회화’라는 원칙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성헌 박보영 대표 변호사는 “REPI는 수형자의 재범을 막기 위해 개발된 통계적 도구지만, 인간의 자유의지와 변화 가능성을 수치화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며 “수형자의 처우는 형벌이자 동시에 회복의 과정이어야 하며, 숫자가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두는 평가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