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지 못한 편지

 

보내지 못한 편지

 

“자녀들은 때로 부모가 자식들을 아끼는 것보다 부모를 더욱 사랑한다.” 오래전에 아동심리 전문가에게서 들은 얘기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구치소라는 낯선 환경에 들어오기 전에 평범한 사회인으로, 또 한 가정의 아버지로 지냈을 때, 가끔가다 어린 두 아들이 저를 빤히 쳐다보며 미소를 지을 때면 그 얘기가 종종 떠오르곤 했습니다.

 

작년에 다른 구치소에서 지낼 때 ‘가족 만남의 집 접견’을 했습니다. ‘장소 외 접견’이라고 불리는데, 접견 시간이 더 길고 가정의 거실 같은 분위기로 꾸며진 방에서 만나 손도 잡고 포옹도 할 수 있는 보다 따뜻한 접견 방식입니다.

 

몇십 분의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곧 헤어질 시간이 되어 아쉬움이 묻어나는 포옹을 하며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습니다. 접견하는 내내 두 아들과 저는 명랑한 표정과 말투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 중학교 1학년이 된 두 아들과 아내는 집으로 돌아갔고, 며칠 후 아내와 통화를 했습니다.

 

예상 밖에 아내가 한 말이 저의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둘째 아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차 안에서 울었고 또 집에 도착해서도 펑펑 울었다고 했습니다. 접견할 때 저에게 궁금한 표정으로, 제가 입은 반팔옷의 목 부분이 왜 그렇게 늘어졌는지, 아빠는 거기서 그 옷 하나밖에 안 입는 건지 물어봤던 것이 순간 떠올랐습니다.

 

아직 너무나 어린 꼬마 아이가 왜 저 때문에 그토록 많이 울었는지, 그 속은 제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아빠가 그리웠던 건지, 아빠가 불쌍해 보여서 슬펐던 건지, 아니면 또 오랫동안 아빠의 얼굴을 보기 힘들어서 그랬는지…

 

다만, 아들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가 나 못지않다는 것은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내 앞에서는 해맑게 웃고 애교를 부리다가, 헤어지고 나서야 눈물을 숨기지 못한 것을 보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들은 자기가 아빠 앞에서 울면 아빠의 마음이 괴로울까 봐, 제 앞에서는 대견한 모습으로 꾹꾹 눌러 참았던 것입니다. 저는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일 년여의 시간이 지났고, 그새 저는 두 아들에게 보내지 않은 편지를 적어 모아 두었습니다. 때가 되면 직접 만나서 주려고 합니다.

 

아직은 저의 뜻을 다 이해하기 어려운 나이이고, 또 제가 적은 편지의 내용이 말로 그쳐서는 안 되기에 다시 만나서 일상을 함께하게 될 때 주려고 합니다. 편지에는 두 아들에게 표현하는 제 마음과, 함께하고 싶은 계획들을 적어 두었습니다.

  • 치즈를 잔뜩 넣은 계란말이 해주기 – 아침, 저녁으로

  • 아침에 일어날 때 뽀뽀로 인사해 주기

  • 눈부신 날 근사한 바닷가에 가서 손잡고 산책하기

  • 아들들의 꿈에 대해 길게, 자주 이야기 나누기

  • 용돈 저축일기, 가계부 쓰는 법 알려주기

이와 같은 계획들이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여러 곳의 구치소에 신세를 지고 죄값을 치르며 가족과 떨어져 지내느라 아껴줘야 할 때, 함께 있어줘야 할 때 그러지 못했습니다. 다시 만나면 못 해준 만큼 몇십 배, 몇백 배로 잘해줄 것을 다짐해 봅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더는 울지 말고, 힘든 순간이 찾아와도 그때처럼 대견하게 버텨주기를 기도합니다.

 

지금의 헤어짐은 훗날 더 깊은 사랑을 나누고, 더욱더 끈끈한 가족이 되기 위한 디딤돌과 같은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하며, 저처럼 그리운 가족들 생각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수형자 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글을 나눕니다. 모두 힘내세요!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