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예문정앤파트너스] 법정은 지옥이다

사르트르의『 닫힌 방』 같은 법정…
불신의 공간에서 정의는 가능할까

 

법정은 아주 독특한 자기장을 뿜어내는 곳이다. 일반적인 공공기관 청사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분위기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묘하게 불편하게 만드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좁은 공간에서 어딘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판사가 있고(거울이 없으니 판사 본인은 그냥 포커페이스이겠거니 생각할 때가 많다. 나도 그랬다), 말을 하거나 다리를 꼬면 경위가 바로 다가와서 귓속말로 주의를 준다.

 

검사의 표정은 더 불편할 때가 많다. 경직된 표정의 판사와 검사가 회전 버튼을 누른 선풍기 머리처럼 좌우로 천천히 오가고, 경위가 이따금 다가와 귓속말로 눈치를 주는 법정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법정 분위기가 그렇게 불편한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의심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상대가 거짓말을 할까 봐, 갑자기 난동을 피울까 봐 경계하는 것이다.

 

서로 신뢰하는 이들이 모여있는 공간이라면 사뭇 분위기가 다를 것이다. 침묵 대신 웃음꽃이 피고, 말투와 시선에 냉기 대신 온기가 담기고, 경직된 자세로 앉으라고 강요하는 대신 이완된 모습으로 있을 것이다.

 

법정은 양측이 대결을 펼치는 ‘코트(Courthouse)’이지만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테니스 경기장(court)과 비교해 보면 그 성격이 냉담하다.

 

예컨대 2008년 윔블던 결승전에서 페더러와 나달은 5시간 가까이 치열하게 싸웠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불신이나 의심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서로가 꼼수를 쓰거나 반칙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경기에만 몰두한다. 그렇기에 지더라도 상대를 인정하고 존경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페더러와 나달이 법정에서 만나 수시로 맞붙는 검사와 변호사였다면 이야기가 달랐을 것이다.

 

심판의 표정에는 냉소나 의심은 보이지 않는다. 테니스 경기에서의 심판은 법정에서의 판사보다 더 높은 곳에 앉아 있지만, 이는 공이 선을 넘어가는 것을 정확히 보기 위해서일 뿐이다.

 

관중도 두 선수를 지켜보며 환호할 뿐 적대감이나 혐오를 내뿜지 않는다. 선수들이 서브를 넣기 전 관중들이 침묵을 지키는 것도 경기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자율적으로 하는 것일 뿐이다.

 

반면 법정의 당사자들은 서로를 불신한다. 판사는 피고인을 믿지 않는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처벌을 줄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변호사도 믿지 않는다. 돈을 많이 받으면 거짓말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검사도 판사를 믿지 않는다. 검사들은 순진한 판사들이 범죄가 만연한 현실을 모른다고 생각한다.

 

변호사도 판사를 믿지 않는다. 종종 편견에 사로잡혀 있거나, 인격적으로 미숙해서 화를 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판사, 검사, 변호사의 관계는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을 떠올리게 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가르상, 이네스, 에스텔이라는 세 인물은 서로의 시선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려 하지만, 끝내 상대에게 인정받지 못해 심리적 지옥에 빠진다.

 

이들은 검사처럼 서로를 고발하고, 판사처럼 냉정히 심판하려 들고, 변호사처럼 자기합리화를 하다 결국 “타인이 지옥”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법정에서 판사, 검사, 변호사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판사, 검사, 변호사가 서로 불신하고 견제하는 가운데 진실과 정의가 드러나도록 설계되었다지만 사실 법정은 “닫힌 방”에 더 가깝다.

 

상대가 자신을 믿어주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끝내 불신함으로써 상대를 지옥에 빠뜨릴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피고인 입장에서는 검사의 무자비한 기소, 판사의 피고에 대한 불신은 지옥과 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