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을 맡다 보면 피고인들이 자주 하는 착각이 있다.
물론 이런 착각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수사기관이나 법정 같은 낯설고 두려운 공간에 처음 놓이면 누구나 그 안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본능적인 반응에서 나온 착각들이 때로는 스스로를 불리하게 만들어 결국 좋지 못한 결과를 만드는 경우가 많으므로 미리 인지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피고인들이 흔히 범하게 되는 첫 번째 착각은 “무조건 부인하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피고인들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할 때 본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유리한 정황만을 근거로 “이건 무조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반응일 수 있고, 때로는 억울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로 증거 기록을 열어보면, 피고인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거나 오히려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가 남아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예컨대, 본인은 누군가와 나눈 대화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거나, 당시 상황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대화가 문자 메시지, SNS 메시지, 이메일, 혹은 통화 녹음 파일 등으로 객관적인 형태로 남아 있는 경우, 무조건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부인하거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부인하게 되면, 법원은 이를 ‘반성이 없다’고 받아들이기 쉽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은 곧 양형 판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동일한 범죄라도 진실을 외면하거나 책임을 회피한다고 판단되면, 형량이 더 무거워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객관적 증거와 기록 앞에서 사실관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심 어린 태도로 반성의 뜻을 전달하면, 재판부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비록 범죄는 인정되더라도, 그 태도와 자세가 선처의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피고인이 당시의 모든 일을 완벽하게 기억하느냐가 아니다. ‘기억’보다 중요한 것은 ‘기록’이다.
형사 재판은 객관적인 증거에 따라 판단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기록을 바탕으로 논리를 구성하는 것이 훨씬 더 실질적인 이익을 얻는 방법이다.
두 번째 착각은 “변호사가 다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기대다. 형사사건에 휘말리게 된 피고인들 상당수는 ‘일단 변호사를 선임했으니 이제부터 알아서 다 해결해 줄 것’이라는 안도감과 기대를 걸게 된다.
물론 변호인은 법률적으로 필요한 전략과 논리를 세우는 전문가다.
하지만 그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초 자료와 사실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정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피고인 본인이다.
금융거래 내역, 가족관계증명서, 문자 메시지, 참고인의 연락처 등은 결국 피고인이 도와주어야만 확보할 수 있는 것들이다.
특히 최근에는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피고인 본인의 동의나 협조 없이는 금융기관이나 관공서에서 자료를 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변호인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법리에 정통하더라도 정보가 없으면 방어 자체가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특정 계좌로의 입금 내역이 억울함을 해소해 줄 수 있는 핵심 증거인데, 피고인이 통장이나 인터넷뱅킹 기록을 제출하지 않아 그 내역을 입증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즉, 변호인은 피고인이 제공하는 정보를 기반으로 최선의 전략을 세우는 것이지 피고인 대신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해 주는 사람이 아니다.
피고인의 입장에서 재판은 그 자체로 낯설고 두려운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일반인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상황들에서 착각을 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착각과 오해가 반복 및 누적된다면, 사건은 더 이상 되돌리기 어려운 지점까지 흘러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방어의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고, 피고인은 본인이 받을 수 있었던 최소한의 관용조차 받지 못할 수 있다.
피고인 스스로가 사건의 주체로서 변호인과 함께 고민하고, 능동적으로 움직일 때 비로소 의미 있는 방어가 가능하다.
무지와 두려움에서 비롯된 착각을 줄이고, 변호인과 긴밀히 소통하며, 증거에 기반한 현실적인 판단을 통해 전략을 세울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진정한 방어가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