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자금세탁용 허위 법인 명의 금융거래, 실명법 위반 해당” 첫 판단

대법원이 자금세탁을 목적으로 설립한 허위 법인의 명의로 금융거래를 한 경우, 이는 ‘타인의 실명’을 이용한 거래로서 금융실명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범죄수익은닉규제법과 금융실명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 씨 등 사건에서 지난달 5일 금융실명법 위반 무죄 부분 등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에 돌려보냈다.

 

이들은 2023년 온라인 도박 및 투자사기 조직과 공모해, 상품권 판매업체를 가장한 허위 법인 명의로 개설한 계좌를 범죄수익금의 입출금에 활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수사기관은 피고인들이 계좌 정지를 피하려고 허위 대화내역을 제출하는 등 위장 행위도 벌였다고 봤다.

 

1심은 이들의 금융거래가 자금세탁을 위한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모든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이들의 다른 혐의를 인정해 각각 징역형 집행유예 또는 징역형을 선고하면서도,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법인 대표이사 자격에서 법인 명의로 한 금융거래를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타인의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한 경우'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회사는 법인으로서 특성상 자연인과는 달리 기관을 통해 활동할 수밖에 없으므로, 대표이사가 자신이 대표이사로 재임하는 주식회사 명의 계좌를 사용하는 행위는 '주식회사가 대표이사를 통해 자신 명의 계좌를 사용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피고인들이 등기상으로는 ‘상품권 매매업’을 명시했지만 실제로는 범죄수익 자금세탁만을 목적으로 법인을 설립했기 때문에, 법인 명의의 거래라도 실질적으로는 ‘타인의 실명’을 이용한 금융거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표자가 법인 명의로 금융거래를 했더라도, 범죄에 이용할 목적으로 법인 명의를 수단으로 삼은 경우 이는 타인의 실명을 이용한 거래”라며 “법인의 설립 목적, 계좌 개설 경위, 자금의 조달과 사용 내역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