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무기수 1,700명 넘는데 가석방은 ‘연 1명’

법에 규정된 가석방 제도이지만
무기수에겐 사실상 무용지물…

가석방 심사 기준은 비공개
교화 가능성보다 국민 정서 우선

 

교정시설에 수감 중인 무기수는 1,700명이 넘지만, 실제 가석방으로 사회에 복귀한 사례는 지난해 단 1건에 그쳤다.


형법상 가석방이 가능하도록 규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형기 없는 종신형’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묻지마 살해’ 등 강력 범죄가 잇따르면서 국민 불안감이 고조되고, 이로 인해 무기수의 가석방에 대한 정서적 저항이 커지고 있다.


9일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교정시설에 수감 중인 무기형 수형자는 총 1,709명으로, 전체 수형자의 약 2.8%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 실제로 가석방이 이뤄진 사례는 단 1건에 불과하다.


가석방 심사는 수형자의 교정 성적, 건강 상태, 사회 복귀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루어진다. 형법상 무기형 수형자도 20년 이상 복역하면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명시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심사 기준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통과율도 극히 낮아 사실상 무의미한 제도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가석방된 무기수의 3년 내 재복역률은 0%를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장기 수형자일수록 교정 효과가 안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전문가들은 실제 가석방 심사에서 무기수들이 통과하지 못하는 것은 재범률과 교정 효과 등 객관적 지표보다 국민 법감정, 정치적 부담 등을 고려한 ‘정무적 판단’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실제로 2024년 교정시설 내 직업훈련, 심리상담, 종교 및 인문학 프로그램 이수율은 전체 수형자 중 62.7%에 달하며, 무기수나 장기수일수록 프로그램 참여율이 높고, 평가 결과도 우수한 경향을 보였다.


무기수 상당수가 교정시설 내에서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도서·노작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점은, 교정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확대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같은 흐름은 전 세계 교정행정의 최근 경향과도 일치한다.
유럽연합(EU)과 유엔(UN) 인권이사회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비인도적 처우’로 간주하고 있으며, 모든 수형자에게 정기적 가석방 심사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도 우리 형사정책을 유엔 기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점진적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가석방 가능성을 열어두되 심사 기준을 합리화하고 재범 가능성에 대한 실증적 지표를 바탕으로 심사하는 방식이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성헌 박보영 변호사는 “엄벌주의가 교정행정의 전부였던 시대는 지났다”며 “무기형 수형자에 대한 통제 일변도의 처우는 실질적인 사회 복귀 기회를 원천 차단할 뿐만 아니라, 교정 제도의 정당성도 스스로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순히 무기수의 석방 인원을 늘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심사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 기준에 부합하는 수형자에게는 실질적 기회를 부여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