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려우면 경제범죄가 기승한다’는 말이 있다. 단순한 속설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 범죄 통계를 들여다보면 그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경제가 위축되고 민생이 어려워질수록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또 누군가는 그 어려움을 악용해 범죄에 손을 대는 일이 반복된다.
최근 언론에서 ‘대한민국 경제가 어렵다’, ‘경기가 나쁘다’라는 보도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사기 범죄에 대한 문의가 많이 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보이스피싱, 주식 리딩방, 로맨스 스캠 등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 유형에 대한 상담 요청이 많아지고 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평범한 서민층으로 금전 피해는 물론 정신적 안정까지 무너뜨리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파장도 크다.
최근 문의가 폭증한 범죄 유형 중 하나는 바로 보이스피싱 수거책 혹은 전달책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오늘 이 문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그 구조상 범죄 수익을 회수하는 역할을 누군가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이른바 ‘수거책’ 혹은 ‘전달책’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피해자로부터 직접 현금을 전달받거나, 다른 공범에게 받은 현금을 조직의 지시에 따라 운반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 중 보이스피싱 범행임을 알고 현금을 수거하거나 전달한 사람은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무죄를 선고받고 누군가는 징역형•실형을 선고받는데, 왜 그럴까?
첫 번째 이유로는 보이스피싱 범죄의 구조적 특징을 꼽을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보이스피싱 주범들은 대부분 중국, 미얀마, 캄보디아 등 해외에 거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특성 탓에 경찰이 범죄의 ‘몸통’이라 할 수 있는 총책이나 지휘책을 검거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수거책이나 전달책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질 경우,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돈을 받아 간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고, 주범은 잡히지 않은 상태라면 피해자들은 당장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막막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경찰, 검찰, 법원에서는 보이스피싱 수거책 또는 전달책에 대해 무죄 판단을 더욱 엄격하게 한다.
두 번째 이유로는 경찰 조사 시 변호사의 동석 유무 차이를 들 수 있다. 보이스피싱 범행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담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경찰은 그 사실을 전제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보이스피싱 범행인 줄 모르고 하신 거죠?”라고 묻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경찰은 “에이~ 그래도 부동산 계약금을 요새 누가 현금으로 주나요. 이상하지 않아요?”, “가서 돈만 받아오는데 일당을 15만 원씩 주는 곳이 어디 있어요. 수상하지 않아요?”, “솔직하게 말하면 저희가 다 참작해 드립니다. 계속 몰랐다고 하면 본인에게 불리합니다”는 식의 질문을 수도 없이 던진다.
절대로 이와 같은 유도 심문에 넘어가면 안 되는데, 변호사 동석 없이 조사를 받게 되면, 유도 심문에 자신도 모르게 넘어가거나 본인의 진술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조차 모른 채 조사를 마치게 된다. 그리고 그 대가는 대부분 실형이라는 가혹한 결과로 이어진다.
반면 변호사가 동석하게 되면 경찰의 유도 질문을 적절히 제지하거나 진술을 조정하면서 불리한 진술이 남지 않도록 조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아이러니하게도 (소수의 기획자를 제외하면) 피해자만 있는 범죄다. 통상적으로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히 나뉘지만, 이 범죄는 구조적으로 피해자도, 수거책이나 전달책도 결국 모두 피해자일 수 있다.
피해자들은 소중한 돈에 대한 금전적 피해를 입는다. 그러나 수거책이나 전달책은 자신의 돈을 편취당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피해를 입는 것은 수거책이나 전달책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조직의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일당 10~20만 원을 받는 심부름을 했고, 그 대가로 몇 년씩 실형을 살고,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피해금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는 금전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너무나 가혹한 처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방법은 다양하게 있다. 보이스피싱인 줄 모르고 돈을 수거 또는 전달했다면 절대 희망은 끈을 놓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