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법.알.못 상담소’ 코너에서는 보이스피싱 관련 사건에서 자주 받는 질문들에 대해, 올해 대법원에서 선고된 판례와 함께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독자 여러분께 반가운 소식은 아닙니다. 법원이 무죄를 인정하는 기준이 얼마나 엄격한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정확히 알아야 변론 방향도 올바르게 설정할 수 있고, 불이익을 받는 일도 없을 것이므로 자세히 설명해드리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제 설명이 현재 보이스피싱 관련 사건에 연루되어 대응 방향을 고민하고 계신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Q.
제가 아르바이트를 지원했다가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결과적으로 현금을 전달하는 업무를 하게 됐습니다. 현재 구속 기소된 상황인데요.
그런데 얼마 전 공소장을 받아 보니 제가 전혀 알지 못하는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성명불상자의 금융사기 조직원이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금융기관 소속 직원을 사칭하며 거짓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전혀 그 성명불상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실제로 본 적도 없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피해자를 속였는지는 당연히 알지 못하고요.
왜 제가 이런 범죄 조직의 공범으로 기소되는 것인지요? 설령 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방조범으로 처벌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A.
질문자께서 얼마나 당황스러우실지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 한 일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건지 겁도 나실 텐데요.
사실 이는 비단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에게만 발생하는 문제는 아니고, 단독 범행이 아닌 조직 범행의 경우에는 항상 발생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범행 전모를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 같은 이유만으로 무죄 판결을 받는다거나 방조범으로 인정되긴 어렵습니다.
올해 1월, 대법원은 보이스피싱 범행에서 현금 수거 등 부차적인 임무만을 담당하며 범행 방법을 구체적으로 몰랐던 피고인이라 하더라도 사기죄 공동정범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2024도13466).
이는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같은 취지의 리딩 케이스를 선고한 이후 이를 재확인한 판결입니다(2024도10141).
해당 사건은 1심에서 유죄,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이 항소심의 무죄 판단을 뒤집은 것인데요.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사기의 공모공동정범이 그 범행방법을 구체적으로 몰랐다고 하더라도 공모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며 “보이스피싱 범죄에서 현금수거책의 공모사실이나 범의는 다른 공범과 순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뜻이 통해 범죄에 기여하고 범죄 실현 의사가 결합돼 피해자의 현금을 수거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이러한 인식은 미필적인 것으로도 충분하며 전체 보이스피싱 범행방법이나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인식할 필요는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어 “보이스피싱 조직은 검거에 대비해 총책, 유인책, 현금수거책 등으로 각각 역할을 분담하며 고도의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고, 범행 가담자들 또한 순차적 공모를 통해 각자 맡은 역할에 따른 일부 기능만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 “이 같은 보이스피싱 조직의 운영 현실을 고려할 때 A씨가 반드시 보이스피싱 범행 실체와 전모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만 각각의 범죄의 공동정범이 되는 것은 아니며 보이스피싱 범행의 수법 및 폐해는 오래전부터 언론 등을 통해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전체 보이스피싱 범행 방법이나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인식하지 않았어도 처벌이 가능하고, 방조범으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라는 점이 이번 판례의 핵심입니다.
이 판례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공소장에 내가 관여하지 않은 범죄사실이 기재되어 있다고 해서, 그 이유만으로 억울함을 주장하는 건 잘못된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재판부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을 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고, 도움도 되지 않으니 주의하셔야겠습니다.
Q.
저는 코인 장외거래(OTC) 업자입니다.
해외에서 무역업을 하는 고객으로부터 현금을 테더코인으로 바꾸고 싶다는 의뢰를 받고, 현금을 송금받은 다음 테더코인을 사서 고객이 지정한 전자지갑으로 보내주었는데요.
제가 받은 현금이 보이스피싱 범죄와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고객이 사기 범죄 조직원이라거나, 제가 사기 범죄를 돕게 된다는 것을 알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기방조죄로 구속 기소됐는데, 제가 무죄를 받을 수 있을까요?
A.
질문자께서 처한 상황은 제가 전문성을 갖고 다수의 사건을 직접 진행해온 분야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무죄를 받을 수는 있지만, 단순히 “의심하지 못했다”고 주장해서는 안 되고, 조금이라도 일반적인 거래 흐름에서 벗어난 정황이 있었다면, 이 부분을 상세히 소명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사건은 고객(사실은 사기 범죄 조직원)이 여러 계좌에서 돈을 보내오거나, 또 다른 계좌로 송금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는 불법 자금을 세탁하는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여러 차례 송금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고 소위 통장 누르기 등 횡령 사고 발생의 위험성도 있는데 이를 무릅쓰면서까지 이런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정황을 통해 피고인이 적어도 의심은 했을 것이라고 재판부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또, 고객과 별다른 접점이 없고 텔레그램으로 의뢰하는 관계에 불과하였다면 이 또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를 믿을 수 있는 아무런 담보 장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금액이 오갔다면, 이에 대해 법원은 질문자가 상선의 존재를 알고 있고 공동의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정범의 사기 범행 실행을 용이하게 만들겠다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거나, 질문자가 이들을 배신하였을 경우 그에 따른 보복이 예정된 관계이었을 경우에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추가로 조사 과정에서 계좌에 해외 IP가 접속된 것이 확인된다거나, 휴대전화 포렌식 과정에서 이러한 의심을 뒷받침할 수 있는 대화 내용이나 키워드 검색 내역이 확인된다면 더욱 유죄로 인정될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정리하면, 자금세탁책으로 의심받는 상황에서 무죄를 받기 위해서는 일반적이지 않은 거래 과정에 대해 그 사유를 하나하나 소명해야 합니다.
고객이 먼저 여러 계좌에서 송금하는 이유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거나, 고객과 실제로 만난 적이 있다거나 또는 고객을 소개해 준 사람과의 신뢰 관계가 매우 두터웠다는 점 등을 설득력 있게 소명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고의가 어디까지 넓게 인정되는지를 최신 판례를 중심으로 분석해봤습니다. 생각보다 무죄 입증 기준이 매우 높다는 것, 체감되셨을 텐데요.
판례의 태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된 변론 전략으로 대응하게 되면, 오히려 혐의를 전부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보다 더 못한 결과를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당장은 “무죄를 받게 해드리겠습니다”라는 변호사의 말이 달콤하게 들리겠지만, 실제로 그것이 가능한지는 냉정하게 판단해봐야 합니다.
저는 항상 솔직한 상담을 드리는 걸 최우선으로 합니다. 결국은 그것이 구치소 내에서 ‘롱런’하는 비결이 아닐까요? 모두 건강 잘 챙기시고, 하루빨리 좋은 결과 있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