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법.알.못 상담소’ 코너에서는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해서 ‘차용 사기’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나 재판을 받게 된 분들이 자주 하시는 질문들에 대해 짚어보려 합니다.
우리 일상에서 은행이나 대부업자뿐만 아니라 가족, 지인 등 주변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려야 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돈을 빌릴 때는 정말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약속한 날짜가 다가와도 갚을 돈을 모으지 못해서 말미를 좀 더 달라고 애원하는 경우도 상당합니다.
이렇게 돈을 빌렸다가 빌린 돈 전부가 됐든 일부가 됐든 갚지 못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민사소송을 당하게 되겠지만, 아무래도 돈을 받아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믿고 빌려줬는데, 나를 속였어?”라는 감정까지 개입되게 되어 사기죄로 형사고소까지 하는 경우도 꽤나 많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차용 사기’ 사건으로 막막함을 느끼고 계시다면, 이 글이 조금이나마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Q. 저는 돈을 빌릴 때 마음속으로 “어려울 때 도와준 만큼 꼭 기한 내에 다 갚아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이 제가 애초에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면서 사기죄로 고소했어요. 전 너무 억울한데, 제 솔직한 마음을 경찰한테 가서 말하면 인정될 수 있을까요?
A. ‘차용 사기’라며 고소를 당한 경우, 통상적으로 돈을 빌릴 당시에 ‘갚을 의사와 능력이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나 머리 속에 어떤 생각이 있었는지는 객관적으로 밝혀내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차용 사기’ 사건에 있어서 ‘갚을 의사와 능력이 있었는지’가 결국 사기죄가 되기 위한 요건 중 ‘사기의 고의’가 있었는지와 연결됩니다.
예를 들어 돈을 빌릴 당시에 '그냥 돈 떼먹어야지’라는 마음과 생각이었으면 사기의 고의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될 것이고, '내가 지금 아무 재산이 없는데, 혹시 못 갚으면 어쩌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돈을 빌리더라도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인 아니면 알 수 없는 이러한 주관적 사정을 어떻게 밝혀낼까요? 판례는 사기죄의 편취의 고의는 자백이 없는 한 피고인의 재력, 환경, 범행 내용, 거래 이행 과정 등의 객관적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한다고 봅니다(대법원 1994. 10. 21. 선고 94도2048 판결).
따라서, 단순히 억울한 마음을 갖는다고 해서 경찰이 봐주는 것이 아니라, 돈을 빌릴 당시를 기준으로 그 전후의 여러 객관적 상황들을 통해 고의가 있었는지 판단하는 것입니다.
질문자의 경우, 억울한 마음만 가지고 경찰에게 호소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정 중 어떤 것이 불리하고 어떤 것이 유리한지를 파악해 조사에 임해야 합니다.
이러한 판단은 유사 사건을 많이 경험한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함께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왜냐하면, 돈을 받지 못한 사람 입장에서도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질문자에게 불리한 객관적 정황을 나열해 고소장을 작성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질문자 역시 유리한 사정과 불리한 사정을 탐색하며 조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Q. 저는 약속된 기한은 못 지켰지만, 주변에서 겨우겨우 돈을 구해서 다 갚았는데, 그럼 사기죄가 아니게 되는 건가요?
A. 원칙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기죄 여부는 ‘돈을 빌린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기한 이후에 돈을 다 갚았다고 하더라도 당시에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판단되면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후에 돈을 전액 변제한 사실은 형량에 반영되어 선처를 받는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Q. 그렇다면 형사고소 당한 후 제가 돈을 갚고 합의를 해도 어차피 죄가 된다면, 굳이 무리해서 합의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요?
A. 아닙니다.
차용 사기 사건뿐 아니라 모든 재산 범죄에서 ‘합의’는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무죄 주장을 하려면 “돈을 갚을 생각으로 빌렸는데, 이후 사정이 나빠져서 못 갚고 있다”는 주장을 해야 하는데, 이 주장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일부라도 변제하고 합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혹시라도 판사가 사기죄를 인정하더라도, 합의가 되어 있다면 형량을 줄이거나 집행유예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Q. 그렇다면 아예 고소를 당했을 때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합의를 하면 재판을 안 받게 될 수도 있나요?
A.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폭행 사건의 경우 경찰 단계에서 합의가 되면 재판까지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기죄의 경우에는 혐의가 인정된다면 합의와 무관하게 재판을 받게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물론 아주 초기에 고소장이 제출되자마자 합의가 완료되어 경찰이 재량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합의가 됐더라도 사기죄는 재판에 회부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안전합니다.
Q. 합의를 할 때 빌린 돈이랑 이자까지 다 갚아야 하지 않나요?
A.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합의’라는 것도 결국 당사자 간의 조건에 대한 합의이므로,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작성하는 형사합의(처벌불원서)와, 추가적인 민사 청구를 하지 않도록 하는 민사합의가 나뉘어 있습니다.
빌린 돈보다 적은 금액으로 민·형사 합의를 모두 이끌어낼 수도 있고, 상대방이 이를 수용한다면 남은 금액에 대해 추가 청구가 불가능해지는 효과도 생깁니다.
실제로 빌린 금액의 일부만을 변제하고도, 형사사건에서 선처를 받고, 민사소송을 취하하게 만든 사례들도 존재합니다.
이처럼 합의 조건을 유리하게 설계하려면 변호사의 언변과 경험, 전략이 중요하며, 실제 사건에서도 적절한 조율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 사례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