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억울한 일이 있어 제 사건을 알리고자 합니다.
저는 과거에 절도 전과가 몇 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술을 마신 상태에서 동네 과일가게에서 물건을 사면서 5만 원을 내고 잔돈 47,000원을 거슬러 받았습니다. 그런데 술에 취해 있었던 탓인지, 제가 낸 5만 원을 다시 가져간 것 같습니다. 그 사실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이튿날 길을 걷고 있었는데, 과일가게 사장님이 저를 찾았다며 경찰서로 데려갔습니다. 경찰서에서 저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고, 수사관도 “별일 아니니 걱정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고소장이 이미 접수되었고, 불구속 상태로 기소가 되었습니다.
기소된 혐의는 처음엔 ‘사기’였습니다. 저는 전과가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사선 변호사를 선임했습니다. 피해 금액은 47,000원이었지만, 300만 원을 들여 합의서를 받아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에서 공소장 변경이 이루어져, 혐의가 사기에서 절도로 바뀌었고, 특가법(특정 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었습니다.
법을 잘 모르는 저는 변호사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선 변호사는 “누범 기간이더라도, 합의도 했고 피해 금액이 적으니 걱정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1심에서 징역 1년이 선고됐습니다. 항소심에서는 사정상 국선 변호인을 선임했는데, 그분 역시 “곧 나갈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습니다. 주변에서 저를 아시는 공무원분들이 탄원서도 제출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항소가 기각됐고 결국 실형을 살고 출소하게 됐습니다.
저는 지금도 억울한 마음이 큽니다. 당시 사선 변호사의 대응이 적절했는지도 의문입니다. 혹시 재심이 가능할지, 또 법적으로 대응할 방법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A. 안녕하세요, 담장 너머 우체부 법무법인 JK 이완석 변호사입니다. 사기죄로 기소되었다가 공소장 변경으로 절도죄로 의율되어 특가법 절도 누범으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안에 대해 문의하셨습니다.
먼저 경미한 범행이더라도 누범 기간에 재범한 이상 섣불리 결과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특가법상 누범 가중처벌 규정이 적용되는 3회 이상의 절도죄 징역형 전과를 가진 피고인의 경우라면 실형 선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변호인이 관련 사건 경험이 없어 예상을 못 했을 수 있습니다. 혹은 수임을 위해 낙천적인 예상만 늘어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고인이 입게 됩니다.
따라서 무조건 좋은 결과만 말하는 변호인보다는, 불리한 결과와 유리한 결과의 가능성을 모두 검토하여 제시하는 변호인을 통해 전략적으로 대응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따라서 본 사건의 경우 이미 판결이 확정되었지만 사후적으로 사건을 복기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보입니다.
1. 특가법상 누범 가중처벌 규정
먼저 관련 규정을 살펴보면 특가법은 절도·강도·장물취득죄(미수를 포함)로 세 번 이상 징역형을 받은 사람이 다시 죄를 범하여 누범으로 처벌받는 경우 가중처벌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특가법 제5조의4(상습강도·절도죄 등의 가중처벌) 규정을 살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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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야간주거침입절도·특수절도(미수범 포함)의 경우 2년 이상 20년 이하의 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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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특수강도·준강도·인질강도·해상강도(미수범 포함)의 경우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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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물취득·양도·운반·보관·알선의 경우에는 2년 이상 2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상습적으로 절도 등의 죄로 두 번 이상 실형 선고를 받고 집행 종료 또는 면제 후에 3년 내에 다시 상습절도 등을 범한 경우 3년 이상 2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특가법 제5조의4의 규정은 상습범 뿐만 아니라, 같은 조 절도·강도·장물취득 등의 죄 가운데 동종의 범죄를 3회 이상 반복 범행하고 다시 그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여 누범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상습성이 인정되지 아니하는 경우에도 가중처벌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절도 누범 기간 범행인 경우 사기죄로 기소되었는지, 절도죄로 기소되었는지에 따라 본 사안처럼 적용 법조와 형량이 전혀 달라질 수 있어서, 검찰의 공소장변경허가 신청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등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였다고 판단됩니다.
2. 사기죄와 책략절도의 구별
한편 사기죄와 절도죄의 구별이 애매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른바 ‘책략절도’와 사기의 구별 문제입니다. 이 부분은 형법 이론상으로도 구별이 애매한 부분입니다.
쉽게 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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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죄란 속임수를 써서 상대방이 스스로 재산을 넘겨주도록 만든 다음 그 재산을 가져가는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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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략절도란 속임수로 재물을 건네받았으되 상대방이 진정으로 재물을 넘겨준 것이 아닌 경우
를 말합니다.
사기죄의 구성요건을 보면 「사람을 속이고(기망) → 이에 속아(착오) →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교부(처분행위) → 손해 발생」의 구조를 갖습니다. 이때 ‘처분행위의 직접성’이 요구되는데, 처분행위의 결과가 처분행위자(속은 사람)의 행동으로부터 직접 발생해야 하고, 기망자(속인 사람)의 다른 추가적인 행위(중간 행위)가 개입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 점이 책략절도와 구별되며, 상대방을 속여 재물을 건네받았더라도 ‘(직접적인) 처분행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 사기죄가 아니라 절도죄에 해당합니다.
판례 예시를 들면,
① 책을 잠깐 보겠다고 하며 피해자가 있는 자리에서 책을 보는 척하다 가져간 경우 → 절도죄
② 금은방에서 순금목걸이를 살 것처럼 건네받은 뒤 도망간 경우 → 절도죄
③ 예식장에서 축의금 접수인인 것처럼 속여 받아간 경우 → 절도죄
④ 오토바이 시승을 빙자해 도주한 경우 → 절도죄 (단, 자전거 시승은 사기죄로 본 경우도 있음)
본 사건의 경우, 5만 원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 잔돈을 거슬러 받은 다음 다시 5만 원을 가져간 것이어서, 상대방의 의사에 의해 피고인에게 5만 원을 건네준 것이 아니므로 사기죄가 아니고 처음부터 절도죄로 의율했어야 할 사안으로 보입니다.
3. 공소장 변경의 한계
수사기관은 기소 이전까지 피고인을 ‘사기죄’로 조사하였고, 그로 인해 피고인은 범죄를 시인하며 피해자와 합의하고 선처를 바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술에 취한 상태에서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 상황이라 절취의 고의가 없다고 부인할 여지도 있었는데, 피해자와 합의하면 사기죄의 집행유예가 가능하다는 조언에 따라 무죄를 다투지 않고 공소사실을 인정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공소장 변경의 요건(한계)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면 공소장 변경이 허용되나,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을 판단할 때는 규범적 요소(보호법익, 죄질)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1994. 3. 22. 선고 93도2080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1999. 5. 14. 선고 98도1438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의 경우, 5만 원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가 가져갔다는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한 점을 강조하여 공소장 변경이 위법하지 않다는 주장과, 사기죄와 특가법상 절도의 경우 법정형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죄질이 상이하여 동일성이 없다’는 주장이 모두 가능합니다.
하지만 변호인으로서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주장, 즉 ‘공소장 변경이 위법하다’는 주장을 다퉜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즉 ‘사기죄(10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형)와 특가법 절도 누범(2년 이상 20년 이하 징역)의 법정형은 현저히 달라 죄질이 상이하므로, 공소장 변경은 한계를 벗어나 위법하다’고 주장했더라면 재판부가 좀 더 고민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4. 맺음말
재심이 가능한지 여부를 문의하셨지만, 아쉽게도 특별히 재심사유는 없어 보입니다. 다만, 수사 및 재판 단계에서 절도 누범 가중처벌을 받을 가능성을 염두하고 대처하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사건이고, 이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분들에게 도움이 되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