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춘재 연쇄살인’ 9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억울하게 구속 수사를 받았다가 풀려난 뒤 지병으로 숨진 고(故) 윤동일 씨의 재심 재판에서 당시 현장검증 영상이 공개됐다.
수원지법 형사15부(재판장 정윤섭)는 26일 윤 씨에 대한 재판을 열고, 변호인 측이 요청한 당시 현장검증 영상을 약 6분간 재생했다. 영상에는 윤 씨가 겁에 질린 채 수사기관 관계자와 시민들 사이에 둘러싸인 모습이 담겼고, 현장 도착 직후 한 시민이 윤 씨에게 달려들었다가 제지되는 장면도 있었다.
영상이 상영된 뒤 윤 씨 측 변호인은 “윤동일 씨는 지나치게 겁을 먹어 자발적인 현장검증이 이뤄질 수 없었다”며 “그런데도 검찰은 이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임의성 없는 심리 상태가 검찰 수사 과정 전반에 걸쳐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당시 윤 씨는 강간살인 혐의뿐 아니라 강제추행치상 혐의로도 동시에 수사를 받고 있었다. 변호인 측은 “두 사건 조사가 함께 진행됐던 만큼, 피고인의 심리 상태는 동일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재심 청구인인 윤 씨의 친형 윤동기 씨도 발언권을 얻었다. 그는 “이춘재가 자백할 때까지 33년 동안 온 가족이 고통 속에 살았다”며 “19세 고등학교 졸업생이던 동생은 경찰의 고문으로 살인 누명을 썼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억지 자백을 강요받고 구치소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낸 뒤 풀려났지만, 동향조사라는 감시를 받아야 했고 결국 암에 걸려 7년간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윤 씨의 친형은 “죽어가는 동생을 지켜보던 아버지도 병으로 쓰러지셨고, 어머니 역시 14년간 병시중 끝에 몸이 망가져 돌아가셨다”며 “당시 고문과 강압 수사를 했던 형사들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울분을 쏟았다.
한편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관 4명은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퇴직 등 사유로 소환이 불발되자, 윤 씨 측은 증인 신청을 철회하고 과거사위 조사 진술로 대체하기로 했다. 이들에 대한 공소시효는 이미 만료됐다.

윤 씨는 1990년 11월 15일 발생한 9차 사건의 용의자로 불법 연행돼 고문 끝에 허위 자백을 강요받았다. 이후 DNA 검사 결과 범인이 아님이 확인됐지만, 비슷한 시기 발생한 강제추행 사건 혐의로 다시 기소돼 1991년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상소했지만 기각돼 1992년 1심 판결이 확정됐다.
출소 10개월 만에 암 진단을 받은 윤 씨는 1997년 결국 숨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22년 12월 “‘이춘재 연쇄살인’ 수사 과정에서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윤 씨에 대한 재심은 다음 달 9일 열리며, 이날 변론이 종결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