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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사건을 둘러싸고 최근 민주당 일각에서는 ‘특별재판부 설치’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히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사법부를 향한 불만이 커지면서, 내란죄 사건을 별도로 다루는 특별재판부 도입 논의가 한층 속도를 내는 모습입니다.
특별재판부 설치를 주장하는 쪽은 내란 사건의 중대성과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근거로 내세웁니다. 그러나 이미 진행 중인 재판에 국회가 개입해 별도의 법원을 만드는 것은 헌법 정신에 어긋나며, 단 한 사건만을 위해 법원을 신설하는 것 자체가 사법부의 정치화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특별재판부 설치를 반대합니다. 헌법적 가치라는 거창한 명분 때문이 아니라, 향후 다른 사건들의 형량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최근 형사 재판을 보면, 재판부가 법리상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해야 할 상황에서도 정의를 명분으로 내세워 불리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만약 특별법원이 설치된다면 사법부는 여론의 압력을 더욱 강하게 받게 되고, 이러한 경향은 한층 더 가속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내란 재판에만 특별재판부를 두겠다고 하지만, 그 문이 열리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보이스피싱도 서민을 파괴하는 중대 범죄다”, “성범죄도 예외일 수 없다”는 식으로 사건마다 특별법원을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특별재판부 남발 시대’가 열리며, 판사들은 소신 판결을 내리기보다 여론에 휩쓸리고, 피고인들은 억울함을 호소할 기회조차 잃게 될 것입니다.
사실 피해자들의 목소리, 곧 여론을 재판부가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반복돼 왔습니다. 그래서 판사를 국민투표로 뽑자는 안, 변호사 자격이 없어도 판사로 임용하자는 안, 배심원제를 전면 도입하자는 안까지 온갖 대안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안들은 ‘좋아 보이는 신약이지만 부작용이 더 큰 약’이기에, 채택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미란다 원칙을 비롯해 지금의 형사법 체계 속 피고인의 권리들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법률가와 시민들의 오랜 노력 끝에 쌓아 올린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사법부가 ‘나쁜 피고인’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고, 피해자의 눈물을 외면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형사법이 지키려는 대상은 눈앞의 한 피고인만이 아닙니다. 그 뒤에 있는, 수많은 평범한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 전체를 함께 지켜내고 있는 것입니다.
당장 내란 사건의 피고인 윤석열을 겨냥해 특별법원을 설치하면 ‘빠른 정의’가 실현되는 듯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착시일 뿐, 결국 모든 형사사건마다 특별법원 설치라는 위험한 길을 열어젖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재판은 법리보다 정치와 감성에 기댄 장으로 변질되고, 피고인의 권리는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단 한 명, 단 한 사건만”이라며 예외를 주장하지만, 일단 그 금기가 무너지면 다음 차례가 누구일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형사 재판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결국 정의는 실현돼 왔습니다. 전직 대통령 재판에서도 사법 정의가 무너진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아무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히 특별재판부를 거론할 이유는 없습니다. 지금의 재판부에 맡겨 차분히 절차를 밟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미 형량은 충분히 높습니다.
이를 더 강화하거나, 피고인의 방어권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오히려 사법 정의를 훼손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 글은 내란에 동조하거나 특정 인물을 두둔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법 체계 전체가 정치와 여론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드리는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