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안녕하세요. 저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징역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고, 상고가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습니다.
문제는 1심 재판에서 핵심 증거로 사용된 것이 제삼자의 진술조서였다는 것입니다. 이○○씨는 카드 전달책, 현금 입·출금책, 송금책으로 활동한 후 사용한 카드를 폐기함으로써 증거인멸까지 저지른 자입니다. 그로 인한 피해액은 10억원에 육박합니다.
저는 본래 카드 전달책으로 기소되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의 혐의로만 재판을 받아야 했지만, 이씨의 진술조서가 제 재판에 활용되는 바람에 그가 제게 덮어씌운 상기의 죄목들로 대신 처벌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직접적으로 기망을 저지른 적이 없고, 그 때문에 피해액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그 사람의 범죄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모두 져야 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변호사는 ‘이런 건은 재심이 어렵다’고 합니다. 재심이 어렵다면, 자기 행위가 아닌 제삼자의 행위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뜻인 겁니까? 제삼자의 행위로 처벌해도 된다는 법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왜 재심 청구를 할 수 없는 것인지 답변해 주신다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A1. 형사법상 자기책임의 원칙
귀하에 대한 제1심 재판에서 재판부가 귀하가 행하지 않은 범죄사실에 관하여 귀하를 처벌하였다면 이는 형사법상 ‘자기책임의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형사법상 대원칙 중 하나로 ‘책임주의’라고도 하는 자기책임의 원칙은 ‘책임이 없으면 형벌을 부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형벌이란 범죄에 대한 제재로서 법질서에 의해 부정적으로 평가된 행위에 대한 비난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형벌은 그 행위에 대한 책임 있는 자에게 부과하게 되므로 원칙적으로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은 자신이 직접 행한 행위에 대하여만 책임을 지게 됩니다.
귀하의 주장대로 제1심 재판에서 재판부가 귀하가 하지 않은 행위를 귀하가 한 것으로 착각하여 귀하에 대한 판결을 내렸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는 자기책임의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사실오인과 법리오해에 해당하는 위법한 재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재판부가 귀하에 대하여 내린 판결이 귀하에 대한 사건 기록 등 구체적 사정에 따라 전체적인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및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범죄 내에서 귀하의 책임을 단순한 카드 전달책이 아니라 전체 범죄의 한 부분으로 지적한 것일 수도 있으므로, 자세한 사정은 사건 기록 등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A2. 상고심과 재심
만약 본인의 행위와 무관한 범죄에 대하여 처벌을 받게 되었다면, 이에 대한 불복의 방법으로 항소 제기 또는 재심 청구를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항소심에서도 위와 같은 사실관계가 변경되지 않고 인정된다면 상고심에서 사실오인 또는 법리오해를 다툴 수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71조는 “제2심 판결에 대하여 불복사항이 있으면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고심은 ‘판결에 대한 사후심’이므로 항소심에서 심판대상이 되지 않은 사항은 상고심의 심판범위에 들지 않는 것이어서, 피고인이 항소심에서 항소이유로 주장하지 아니하거나 항소심이 직권으로 심판대상으로 삼은 사항 이외의 사유에 대하여는 이를 상고이유로 삼을 수도 없다는 점을 양지하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피고인이 양형부당만을 이유로 항소를 하였고 이에 대하여 항소심이 제1심 판결을 직권으로 파기한 후 제1심과 같은 형을 선고한다면 피고인은 항소심 판결에 대하여 법리오해나 사실오인의 점을 상고이유로 삼을 수 없습니다.
또한 형사소송법 제383조는 상고 이유를 4가지로 규정하고 있는데, ①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ㆍ법률ㆍ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이 있는 때, ② 판결 후 형의 폐지나 변경 또는 사면이 있는 때, ③ 재심 청구의 사유가 있는 때, ④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에 있어서 중대한 사실의 오인이 있어 판결에 영향을 미친 때 또는 형의 양정이 심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현저한 사유가 있는 때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상고심은 원칙적으로 법률심이기 때문에 법리오해 이외의 사유로 상고를 제기하는 것은 제한됩니다.
다음으로 재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재심은 ‘확정된 판결에 대한 예외적 불복수단’으로, 유죄의 확정판결에 대한 중대한 사실인정의 오류가 있을 때 판결을 받은 자의 이익을 위하여 그 확정판결을 시정하는 구제절차를 의미합니다.
형사소송법 제420조는 재심 이유를 한정적으로 열거하고 있는데, 이는 재심이 이미 확정된 판결을 다시 판단하는 것이어서 매우 엄격한 조건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재심은 재심개시절차와 재심심판절차라는 두 가지 단계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재심심판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재심개시요건을 갖추어 전자인 재심개시절차를 통과해야 합니다.
만약 귀하가 재심을 청구하게 된다면 형사소송법 제42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재심 이유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됩니다. 해당 조항의 제5호에는 “유죄를 선고받은 자에 대하여 무죄 또는 면소를, 형의 선고를 받은 자에 대하여 형의 면제 또는 원판결이 인정한 죄보다 가벼운 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새로운’ 증거란 판결 당시 법원에 현출될 수 없었으며 피고인에게도 판결 확정 이후에 새롭게 발견된 것을 의미하고, ‘명백한’ 증거란 확정판결이 사실인정의 자료로 삼은 증거보다 논리와 경험의 법칙상 객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보이는 증거를 의미하며,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재심을 위해서는 증거의 신규성과 명백성이 모두 갖춰질 것을 요구한 바 있습니다.
한편 같은 법 제7호는 “원판결, 전심판결 또는 그 판결의 기초가 된 조사에 관여한 법관, 공소의 제기 또는 그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지은 것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를 재심이유로 정하고 있는데, 이 경우에도 해당 법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지은 것이 명백하다는 주장만으로는 재심이 열릴 수 없으며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될 필요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판결 불복에 따른 재심을 고려한다면 먼저 위와 같은 재심 이유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