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스피싱이나 투자사기처럼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사기 범죄의 경우, 구속된 피고인이 석방될 수 있는 가능성은 ‘피해자와의 합의’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단순히 ‘합의를 시도했다’는 형식만으로는 선처를 기대하기 어렵다. 법원은 합의의 시기, 방법, 내용 등 ‘피해회복의 실질’을 매우 엄격하게 따진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의 신병을 해제하는 제도로 ‘구속취소’와 ‘보석’을 두고 있다. 이 중 보석 제도는 피고인의 출석을 담보하기 위한 조건으로 ‘피해자 권리 회복에 필요한 금전의 공탁 또는 담보 제공’을 명시하고 있으며(형사소송법 제98조), 법원은 보석 조건을 결정할 때 ‘범행 후 정황’, 즉 피해 회복 여부를 반드시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99조). 즉 피해회복 노력은 법원이 구속을 해제하거나 보석을 허가할 때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양형에서도 이 원칙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형법 제51조는 양형의 조건으로 ‘범행 후의 정황’을 규정하고 있으며, 대법원 판례 역시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회복을 핵심적인 참작사유로 인정하고 있다. 특히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조직적 사기 범죄에서는 피해회복의 유무가 집행유예와 실형을 가르는 경계가 된다.
피해자 전원과 전액 합의가 이루어진 경우 법원은 이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의정부지법 2016고단2743 판결에서 법원은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한 피고인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피해자 전원과 합의가 이루어졌고,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점이 주요 참작 사유였다.
반면 동일 사건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공범은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대비는 ‘전원 합의 여부’가 실형과 집행유예를 가르는 분기점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다만 예외적으로 피고인의 가담 정도가 경미하고 범행 지시를 받는 위치에 있었으며 일부 피해 변제를 이행한 경우에는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례도 있다(대구지법 2021고단4249 판결).
이는 일부 변제라도 진지한 태도와 결합될 경우 양형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피해회복 노력이 전혀 없는 경우에는 형량이 크게 가중된다. 대구지법 2022고단2914 판결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주도적 인물에게 법원은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며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하였다”는 점을 불리한 정상으로 명시했다.
이는 피해회복 부재가 독립된 불리한 양형 요소로 기능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판례들의 시사점은 모두 같다. 형식적 합의보다 실질적 피해회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피해자 전원과의 전액 합의가 최선이지만 경제적 여건상 어렵다면 가능한 한 많은 피해자와 성실히 접촉해 실질적 변제 의지를 보여야 한다.
또한 수사 초기부터 피해금 공탁이나 일부 변제를 시도하면 구속적부심 단계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추후 변제하겠다’는 약속보다는 실제 이행된 결과물이 법원을 설득한다. 공범이 다수인 사건에서는 합의 접근 방식 또한 중요하다. 각자가 개별적으로 피해자와 접촉하는 것은 오히려 부정적 인상을 줄 수 있다.
공범 간 협의 아래 피해금을 공동으로 조성해 순차적으로 전액 변제를 진행하는 편이 신뢰를 높이고, 법원 역시 이를 ‘조직적 피해회복 노력’으로 긍정적으로 본다. 보이스피싱 등 조직적 사기 사건에서 피고인의 석방과 형량은 결국 피해회복의 실질적 정도에 의해 좌우된다. 전원 합의는 가장 강력한 선처 사유이며, 부분 변제는 일정 부분 참작되지만 단독으로 실형을 막기 어렵다.
피해회복이 전무한 경우, 다른 유리한 사정이 있더라도 실형이 불가피하다. 결국 변호인은 피고인과 가족에게 법원이 평가하는 기준을 명확히 설명하고, ‘진정한 회복 노력’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방어 전략임을 이해시켜야 한다. 법정에서 감형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기술적 변론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다가가려는 피고인의 태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